▲ 작가 하아무

나는 낯선 용어들이 무얼 뜻하는 것인지 물어보려다가 그 용어들마저 뒤섞여서 정확한 용어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어 입만 벌리고 있었다.

읽어보고 내일이나 모레 전화해라. 구성을 어떻게 바꾸고 인물의 캐릭터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도 생각해보고, 여자 이야기가 빠지면 책 팔아먹기가 어려우니까 그런 것도 잘 버무려서 좀 넣고. 계약금 조로 고시원 서너 달치 방값은 지금 내가 고시원 들러서 주고 갈게. 그리고 이건 용돈 하고. 그가 나가고 난 뒤까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한 떼의 아이들이 몰려들어왔다. 좁은 편의점 안은 금세 돗대기 시장으로 변해 버렸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리를 비워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서너 명이 알바생과 수작을 하고 있는 사이, 다른 서너 명이 깡통맥주 두어 개를 슬쩍한다. 그 중 한 녀석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 어쩌라고. 녀석은 입모양만 그렇게 해보이고, 허튼 짓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듯 한 걸음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선다.

야, 그거 내가 사주께. 나는 녀석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다른 녀석이, 이 시발년이 우리가 뭐 거진 줄 아나, 했고, 다른 녀석이, 아이 재수 없어. 가자, 했다.

그리고 녀석들은 올 때와 같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껌 한 통 팔고 알바생은 무슨 일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나만 쳐다보았다.

무슨……? 무슨 일은, 뭐 별일 아냐. 너 같은 어리바리 때문에 순식간에 애들이 깡통맥주 두세 개 들고 튄 거지. 녀석은 창밖을 보지만 이미 아이들은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술시다.

내 앞에 놓인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재테크 고수가 11억 만들기’ 작업을 완수할 수 있게 고시원 구석 내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던지고 간 알량한 몇 푼 돈으로 알콜을 사서 오장육부를 깨끗이 세척하고 정화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내가 술시다, 하고 중얼거리는 순간 이미 재테크 고수의 필생의 작업은 후순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나는 ‘빠리 이야기’로 향했다. 역시 손님은 없었다. 왔니? 하는 표정이지만 주인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드라마만 봤다. 40대 초반의 그녀는 이혼녀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상해지사로 발령받아 가더니 거기서 새파란 한족 계집과 살림을 차리고 자기와 두 딸 모두를 걷어차 버렸단다.

먹고 살려고 친구가 하던 가게를 인수했는데, 장사가 잘 안 되었다. 나는 그녀를 빠리 언니라고 부른다. 빠리? 가본 적 없지. 비행기 타고 외국에 딱 한 번 나가봤는데, 언제였는지 아니? 남편을 가로챈 중국년 머리채 잡으러 갔을 때. 어떻게 됐냐고? 갈 때는 그 년 머리를 다 뽑아놓을 작정이었는데, 이상하게 비행기를 타고 구름 걷힌 바다를 보니까 응어리져 있던 게 조금 풀리더라. 그래도 상해에 도착해서는 끝끝내 휘어잡으려고 했어. <다음호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