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아무

야, 너 사약을 그만큼 먹었으면 골로 가도 여러 번 갔을 텐데 아직도 안 죽고 있는 거 보면 너도 참 지독한 년이다, 안 그렇냐?

알바생한테 주는 돈이 아까워서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뜯어내는 넌 양반이고? 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새끼. 쏘아주고 나는 창가 제일 구석 쪽 내 자리로 가 앉았다.

걸레 같은 년, 어쩌고 하는 소리가 뒤통수를 스쳐 지나간다.

내가 뒤돌아보자 눈을 내리깔고 모른 척한다. 야, 그거 다 넣었으면 카운터 봐. 한눈팔지 말고, 알았지? 사장은 나하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하다. 나는 상관없지만. 창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퇴근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사랑을 나눌 것이다. 아직 가정을 만들지 못한 젊은 남녀라면 그런 가정을 만들기 위해 밖에서 또 사랑을 속삭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독약과도 같은 커피를 홀짝이며 거리의 군상들을 바라보고 있다.

돌아갈 집도, 같이 저녁을 먹을 가족도 없다.

휴대전화가 울면서 몸을 떤다. 야, 너 아직도 안 들어가고 또 술 처먹고 있지. 아직 아랫도리에 머문 흔적이 다 가시지 않은 그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흘 안에 최종 원고 들어와야 돼, 알았어?

그는 지시만 하는 게 아니라 가끔 호통도 친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야 캐나다까지 가서 바람난 마누라 하고 제가 찬호인지 마이클인지 헷갈리는 아들 녀석한테 돈을 부쳐줄 수 있지 않겠어? 생각만 그렇게 하고 만다.

술 마시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술 마시고 싶어진다. 이대로 앉아서 사람 구경을 더 할까, 술을 마시고 저 햇병아리 같은 알바생을 꼬셔서 섹스를 할까, 그의 말대로 가제 『재테크 고수의 11억 만들기 비법』 대필 작업을 마무리할까, 선택은 쉽지 않다. 만날 되는대로 살지 말고 우선순위가 뭔지 생각 좀 하고 살아라, 그가 어디선가 자꾸만 채근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생각할수록 헷갈리기만 했다. 하기야 내가 누구인지 뭘하는 애인지도 분명치 않은 마당이니 헷갈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나는 이 넓은 서울 하늘 아래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소설을 쓰는 게 본업일까, 재테크 책 대필해주는 게 본업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상대를 바꿔가며 잠자는 게 본업일까.

야, 너 글 쓰는 데 재주가 있구나. 국어 교사인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하필 브래지어 끈에 닿은 손 때문에 놀란 나는 오줌이 짤끔하는 느낌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문장도 괜찮고 글 구성하는 것 조금만 더 연습하면 어디 백일장 같은 데 나가도 될 것 같다.

담배 냄새가 밴 온기가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그냥 간지러운 것과 다른 그 간지러움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나는 내내 그 미칠 것 같은 간지러움을 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