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아무 작가

나는 나가서 커피 한 잔만 마시면 돼. 내 몸속에는 빨간 피 대신 까만 커피가 돌고 있을지도 몰라. 등 뒤에서 혀차는 소리가 들린다.

살찐 혀가 둔하게 내는 소리는 ‘쯧쯧쯧’이 아니라 ‘츳츳츳’에 가깝다.

그녀는 내가 자기 모텔에서 죽어 미이라 같은 몰골로 발견될까봐, 그게 겁나는 것이다.

미이라는 썩지 않고 있다가 다시 살아날 걸 기대하고 죽은 거니까 행복하게 죽은 거잖아. 해피모텔 하고 잘 어울리는구만, 그럼 모텔 홍보도 되고 좋겠네.

그러면 오천평은 손의 일부인 것처럼 들고 다니는 파리채를 탕탕 두들기며, 이년아, 그게 해피해 보이는 표정이더나, 삿대질까지 해대었다. 그 표정이 어때서? 좀 마르기는 했어도 어쨌든 웃고 있잖아.

밖으로 나서는 일은 항상 쉽지 않다.

밝음의 차이 때문에 인상이 구겨지고 뇌가 오그라들면서 위축되는 느낌이다.

먼지가 한꺼번에 코의 점막에 들러붙어 신경을 거슬렀다. 게다가 바짓가랑이 사이로 들어온 낯선 바람이 오금을 저리게 하고 등줄기를 잡아당겼다.

나는 잠시 해피모텔 앞에서, 어디로 갈까 생각한다. 피부 밑 혈관이 가렵다. 아, 커피. 혈관 속으로 커피가 돌게 해야지.

나는 고시원으로 가는 왼쪽 길을 버리고 곧장 아래로 내려간다. 큰길에 면한 모퉁이 편의점의 커피 맛이 이 근방에서는 제일 나았다.

그런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바뀌었다. 잘해야 이제 갓 대학에 입학했거나 그렇지 않다면 고등학생으로 보인다. 나는 잠시 멈칫한다.

새똥도 덜 벗겨진 것 같은 알바생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깡통커피나 자동판매기 커피를 마시기에는 기분이 영 꿀꿀하다.

저기, 제가 여기서 만날 마시는 커피가 있는데, 여기 전에 알바하던 학생이랑 사장님은 ‘사약’이라고 불렀던 거거든요. 그게 어떤 거냐 하면, 저기에 끓여둔 원두커피에다가 가루커피를 한 스푼하고 반을 더 타서 주면 돼요. 아, 그리고 꼭 종이컵 말고 머그잔에다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는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할 준비를 한다.

처음 온 알바생들은 누구나 두 번, 세 번 다시 물었고 나는 몇 번이든 다시 설명을 해주어야 그 커피를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알바생은 물음표를 잔뜩 매단 얼굴로 멀뚱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야야, 커피는 내가 타줄 테니까 넌 창고 가서 캔맥주 한 박스 들고 와서 냉장고에 좀 넣어라. 마침 편의점 사장이 들어오며 말했다.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결혼할 계획이라는데, 몇 달 전에 나와 딱 한 번 잔 적이 있었다.

너한테서는 늦가을 갈대 서걱대는 소리, 전시용 해골이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나서 섹스에 집중을 못하겠어. 그러고는 다른 섹스 파트너에게로 가버렸다.

야, 너 사약을 그만큼 먹었으면 골로 가도 여러 번 갔을 텐데 아직도 안 죽고 있는 거 보면 너도 참 지독한 년이다,

안 그렇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