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아무

우리는 그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있다가, ‘아, 보아라 보아라’ 할 때는 서로 실눈을 뜨고 눈을 떠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살피곤 했다.

그러면 창으로 들어온 햇빛에 부유하는 먼지가 미세하게 반짝였고, 그 사이를 그는 떠다니고 있었다. 떠다니면서 그는, 여러분의 앞길은 아직 창창하다. 그러니 절대 지치지 말 일이다, 힘들고 어렵고 괴롭더라도 저 천년의 바람처럼 쉴 새 없이 되풀이하고 노력할지어다,

하다가 종내는, 뽀이스 비 엠비셔스(Boys be ambitious)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다가 무슨 대단한 유모어를 생각해냈다는 듯, 아니지 아니야, 너희들은 ‘뽀이’가 아니고 ‘꺼얼’이니까, 꺼얼스 비 엠비셔스라 해야지, 켈켈켈.

그의 마누라 경숙이는 나와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2층 양옥집에 살았는데, 우리집에 오는 햇빛을 거의 막고 있었다. 가뜩이나 낮고 낡은 우리집은 더욱 음습하게 엎드려, 한 발 들어서면 마치 연옥이나 지하세계로 통할 것만 같았다.

우리가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등교할 무렵, 경숙이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황망한 표정의 그가 농협 조합장이던 경숙이 아버지를 찾아가고, 우리는 뒤에서 쑥덕거렸다.

얼마 후 열 달의 절반만 채운 경숙이의 배가 또 갑자기 쑥 꺼지고, 우리는 또 뒤에서 쑥덕거리고 히히덕거렸다. 그 후에도 그는 낮이면 태연히 「천년의 바람」을 읊조리고 꺼얼스 비 엠비셔스를 외쳐댔다.

우리는 그가 시는 「천년의 바람」, 영어 경구는 뽀이스 비 엠비셔스밖에 모른다는 결론을 내려두고 있었다. 그리고 퇴근하고 밤이 되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2층 양옥집 대문을 드나들었고 나머지는 읍내 맥주집이나 색주가를 돌아다녔다.

경숙이네 대문 앞에서는 자주, 여관 앞에서는 간혹 나와 마주쳤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손바닥을 보이는 미국 영화의 한 장면을 어색하게 흉내냈다. 한번은, 그게 무슨 뜻이에요? 물었을 때도 그는 그저 으쓱해 보이기만 했다.

경숙이와 그가 결혼식을 할 때도 그랬다. 우리가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였고, 경숙이의 배가 두 번째로 부풀어 올랐을 때였다.

사회자가 신부 입장, 하자 모두들 배부른 신부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쑥덕거리거나 히히덕거렸지만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그의 눈빛이 허공에서 반짝 마주쳤는데, 그 순간 그는 예의 그 ‘으쓱’을 해보였던 것이다.

나는 부쩍 헐렁해진 브래지어와 팬티, 면티와 청바지를 걸치고 나섰다. 야, 밥 먹고 가라, 해피모텔 주인여자가 소리친다.

내 몫까지 몽땅 먹고 오만평 되셔, 나는 손까지 흔들어준다. 나는 그녀를 오천평이라 부른다. 내가 일 년 전 처음 그녀를 봤을 땐 오백평이라고 했었다.

야, 너 그러다가 죽어. 이년아,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까 와서 한 숟갈이라도 떠.

아이고, 됐네요. 나는 코웃음을 친다.

나는 나가서 커피 한 잔만 마시면 돼. 내 몸속에는 빨간 피 대신 까만 커피가 돌고 있을지도 몰라. 등 뒤에서 혀차는 소리가 들린다. 살찐 혀가 둔하게 내는 소리는 ‘쯧쯧쯧’이 아니라 ‘츳츳츳’에 가깝다.

그녀는 내가 자기 모텔에서 죽어 미이라 같은 몰골로 발견될까봐, 그게 겁나는 것이다. 미이라는 썩지 않고 있다가 다시 살아날 걸 기대하고 죽은 거니까 행복하게 죽은 거잖아. 해피모텔 하고 잘 어울리는구만, 그럼 모텔 홍보도 되고 좋겠네. 그러면 오천평은 손의 일부인 것처럼 들고 다니는 파리채를 탕탕 두들기며, 이년아, 그게 해피해 보이는 표정이더나, 삿대질까지 해대었다. 그 표정이 어때서? 좀 마르기는 했어도 어쨌든 웃고 있잖아. <다음호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