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부터 시작된 연두는
하루가 다르게 봄물을 흘리며 역류하고

수천수만 골짜기 모두 받아 안고
바쁠 것 하나 없다는 듯 느릿느릿
섬진강 오백 리 물길은 여여하고

평사리 무논에 별빛이 유장한 밤

씨 뿌리고 밭을 매던 환한 웃음소리 밟고
배꽃은 또 다시 피고

서희와 길상이가 걸어가고
구천이와 별당아씨가 걸어간 길 따라
배꽃향 무논에 떨어지고
물비린내 진동하고

‣, “가랑잎이 발목에 잠기는” 그 길을 따라 구천이와 별당아씨는 지리산으로 들고, 서희와 길상이가 간도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곳 평사리, 그 봄밤에는 “수천수만 골짜기 모두 받아 안고/바쁠 것 하나 없다는 듯”섬진강은 늘 “여여하”여 “봄물을 흘리며 역류하”는 평사리, 그 봄밤. 시인은 지리산으로 들었다는 구천이와 별당아씨의 안부를 불러내고, 간도로 떠나버린 서희와 길상이가 궁금한 것이다. 원고지 4만 장에 쓰여 진 『토지』속 인물들만 600여 명, 이 세상을 건너가는 온갖 군상들의 이야기가 섬진강 흐르듯 담겨 독자들을 홀리는 대하소설大河小說 - 큰 강이 있어 늘 풍요로운, 하여 시인은 오늘 평사리행에서 작중인물들의 안부를 빌려 박경리 선생을 추모하는 것일 터이다.- 최영욱 

-. 이기영 시인은 전라남도 순천시 출생으로, 2013년 <열린 시학> 신인상, 시집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있으며, <김달진 창원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