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리라는 말 참 예쁘다
평사리하고 부르면
어릴 적 멱 감던 친구들 하고
초록을 따먹은 뽀족한 찻잎모양
바람하고 온다.
서로 어깨동무하고 안겨온다
온 몸이 간지럽고 여리기만 해서
만지기도 아까운 이 풋것들에게
향수나 추억이라고 말하면
섬진강 맑은 햇빛에서
건져 올린 잘 여문 재첩과
산수유 배꽃도 얼굴 내밀어 답한다
더러 소나무 창창한 숲 지나고
유유한 철교 지나 화개장터 쯤
고향 떠난 이의 착한 안부가
차례로 도착해서 인사를 한다
북천역에서부터 함께 모인
이렇게 고마운 이름들에게
모두 평사리하고 다시 부르면
악양면 평사리길 76-23번지
대봉감보다 더 맛있는 이야기에
대청마루가 다 환해진다.

‣- 평사리길 76-23은 문학관의 바뀐 주소, 옛적 평사리 497번지였던 곳. 봄날은 꽃처럼 붐비고 밤이면 쓸쓸해지는 평사리 497번지. 섬진강 재첩이 제일 맛있다는, 그러니까 봄꽃들이 손님처럼 다녀간 5월 어느 날, 최참판댁 행랑채 또는 안채 마당에서 펼쳐진 문학이라는 한판에서 시인은 “초록”또는 연두의 “풋것들”에게서 “향수나 추억”을 빌려 와선 지난 시절들의 안부를 묻는다. “유유한 철교 지나 화개장터 쯤/고향 떠난 이의 착한 안부가/차례로 도착해서 인사를”하기도 하고, “북천역에서부터 함께 모인 고마운 이름들에게”도 평사리로 가자고 꼬드기면서도, 거기 모인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이는 친구인 관장을 대신하는 것만도 같아서 늘 고마웠던 시인 김혜연. 이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없는 기막힌 경계가 놓이고 말아, 보고픈 시인이 되어버린 김혜연, 쌍계사 앞 천년을 살았다는 이팝나무가 올해도 꽃을 피우듯, 아마 내가 시인을 따라가고 난 이후에도, 꽃을 피울 것이어서, 그 빠르고 늦음의 차이를 셈할 뿐이다.- 최영욱

-. 김혜연(1957~2017) 시인은 경상남도 마산시 출생으로, 1993년<시와 시학>신인상, 시집<음각을 엿보다>가 있다.  <계림시회>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