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살보다 더 보드라운
사람들이 모여 산다
기억의 흰 닻 이미 내려져
터진 가슴 사이로 부는
찢어진
바람소리 들으며 산다

오만한 함성들이 마른 하늘을 돌아
피 묻은 깃발 흔들며
절뚝절뚝 가는
참으로 희한한 세상인데
이 시대 하동의 하늘은 희디 흰 새벽이지만
벙어리 섬진강은 속으로 속으로만
울며 흐르네

기다리지 않아도 새벽이 오듯
말하지 않아도 기다리는 백성이 있다
이제 갓 깨어난
유년의 푸른 새벽이
그대 멍든 가슴 한쪽에
수혈을 하고 있다.

▲ “흐르는 물살보다 더 보드라운” 길가에 “흐르는 물살보다 더 보드라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 땅, 하동. 협곡을 내리쏟아 흐르던 섬진강이 보름이나 그믐 사릿물을 받아 출렁이며 오가는 사람들 애간장 태우던 포구였던 동네. 
해량포구에서 오룡정 지나 섬진다리로 이어지는 길은 꿈속 같은 길이었다.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빚어낸 그 늦여름의 그늘 길을 마차가 갔었고 그 마차를 끌었던 쌍둥이 형들이 있었다. 그 쌍둥이 형들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그들도 쫓겨 갈 때 “속으로 속으로만 울며” 갔을까. 그래도 참 다행이다. 모든 상처에 수혈을 해주는 시인이 있으니. 그러한 시인이 하동에 있으니까.  

-. 김정태 시인은 1953년 하동읍에서 태어났다. 1989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으며, 199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다. 
하동군청, 금성면, 하동읍사무소 등에서 근무하였으며, 섬진시조, 경남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