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하고나니 할 일이 없고 마음이 답답하였다. 
하루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한 농부를 만났는데 눈썹이 도탑고, 머리가 희고 손에 호미를 들고 녹차밭에 풀을 메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수고하십니다’하고 말하였다.
농부는 한참동안 나를 돌아보더니 언덕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와 나를 오라고 했다.
나는 그가 노인이었기에 그의 앞에 걸어가 공손히 섰다.
농부가 나에게 묻기를 ‘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 
그대가 입은 옷이 비록 단정하지는 않으나 행동거지가 의젓한 것을 보니 혹 학교의 선생이 아닌가?
아니면 얼굴이 희고, 배가 불록하게 나오고, 거만하게 폼을 잡고 있으니 국록을 먹던 공무원이 아닌가?
여긴 무슨 일로 왔는가?
나는 노인이며, 여기서 나고 늙었기 때문에 거친 들과 축축한 기운으로 가득찬 궁벽한 시골에서 사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대가 이 한낮에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니 죄를 지어 쉬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러한가?
내가 그러하다고 대답하였다.
무슨 죄인가?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자 불의인줄 알면서도 나쁜 짓을 하다가 죄를 얻은 것인가?
아니면 출세는 하고싶은데 능력은 없고 해서 권력에 빌붙어 열심히 손바닥을 비비거나 힘있는 자가 남긴 지꺼기 술이나 먹고 어깨를 구부리고 아첨을 떨며 별짓을 다하다가 요행히 벼슬을 얻었지만 정권이 바뀌어서 죄를 얻어 여기로 온 것인가?
나는 ‘그런게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그렇치않다면 겉으론 겸손하고 청렴한 체하며 헛된 이름을 널리 알리는등 이미지 관리를 하면서 어두운 밤에는 분주히 돌아다니고 굽게 결탁하면서 은밀히 상납하여 다행히 자리를 얻었지만 그 직책은 돌아보지 않고, 군청의 일은 대수로이 여겼으며, 군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않고 오직 아랫사람을 괴롭히고 웃사람 심기만 헤아리며 처자를 보호하는 계책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하늘의 뜻이 무심치 않아 그만 자신의 간사한 것이 드러나고 죄가 발각되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가?하고 물었다.
나는 ‘그것도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이것 저것도 아니라면 그대가 과장이나 국장이 되어 널리 패거리를 만들어 큰소리로 공갈을 치고, 군수의 총애를 빌미로 자만심이 가득하고, 기운이 넘쳐나서 다른 사람을 경멸하였으며, 군수의 신뢰를 훔쳐 자기에게 아첨하면 즐거워하고, 마치 자기가 군수인양 행세하며 모든 것이 자신의 손에서 해결되는 듯 위세를 부리기를 예사로 행하였고, 부하직원을 집안의 종부리듯 아무일이나 시켜먹고, 식당이나 술집에서 부하가 돈 내는 것을 당연히 여기다 못해 심심찮게 부하들이 돈봉투를 갖다 주기를 요구하였거나, 부하직원이 실수하면 큰 소리로 나무라고 면박을 주고, 조금만 보고를 잘못해도 공개적으로 심하게 나무라 상처를 받게 하는 등 갑질을 하였으며, 어려운 일을 만나면 머리가 아프고 겁이나 모든 것을 부하나 동료에게 미루고 자기는 바람에 날리는 티끌처럼 사라지니 참다못한 동료나 부하들이 청와대 신문고에 글을 올려 쫒겨 나기도 하였는가?
내가 답하기를 ‘그것도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목을 나는 알겠도다’ 적폐청산, 규제개혁등을 큰소리 외쳐대면서 폼만 잡았거나 세상 이치도 잘모르면서 자기말만 옳다고 깝죽되었거나 지금의 세상에 살면서도 ‘내가 옛날에 말이야’ 하면서 꼰대짓으로 후배들의 미움을 받았거나 아래에 처하여 있음을 알지 못하고 높은 사람에게 자기 잘난 듯 대들다 괘심죄를 지은 원인이로다.
큰소리로 세상 바꾸기를 떠드는 사람과, 얕은 식견으로 자기가 옳다고 떠들어대는 사람, 옛날을 들먹이며 세상 변화에 둔감하거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자주 거스르는 사람들은 혹은 관직을 빼앗기거나 혹은 죽어서 스스로 자기 몸을 보전하지 못하였거늘 그대는 한 몸으로서 여러 가지 금기를 범하였는데 죽지않고 자리만 빼앗겼으니 군민의 은전이 너그러움을 알수가 있도다
그대는 지금부터라도 더욱 조심해서 살아가면 앞으로의 화는 피하게 될것이요. 
나는 그 말을 듣고서 그가 숨어있는 고인임을 알았다.
엎드려 노인에게 청하기를 ‘노인께서는 선생중의 선생이시니 제가 모시고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하였다.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대대로 농사짓는 사람이요
밭을 갈아서 면사무소에 세금내고, 조합의  비료값 외상갚고, 남는 것으로 가족을 양육하니 그외의 것은 나의 알바가 아니요.
그대는 물러가서 더 이상 나를 어지럽히지 마시오. 
나는 물러나 탄식하면서 지난 30여년의 공직을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군민을 위해 자신을 바쳤는가?
나는 정말로 청렴결백하여 불의한 것은 한푼이라도 받지 않았는가?
나는 출세를 위해 높은 사람에게 아부하고 찾아 다니지 않았는가?
나는 정말로 직원들을 아끼고 사랑하였는가?
어느 하나 떳떳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수 있을까?
노인의 지적처럼 그냥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는 비겁한 변명을 앞세워 무탈하게 30여년을 보냈다.
제대로 한게 무엇인가 애써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입만 열면 ‘하동발전과 군민행복’이었으나 되돌아보니 말뿐이었다.
당시는 내가 하는 일들이 하동발전과 군민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철썩같이 믿었고, 자랑스러이 여겼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럽다.
군민여러분 참으로 죄송합니다.
삼봉 정도전이 33세에 전라도 나주에 귀양가서 지은 ‘농부에게 답하다 (答田父, 답전부)’를 패러디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