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 문찬인

도비 문찬인

초가을인데 비가 심상찮게 내렸다.

호우경보, 주의보가 몇 번 내리고 하루걸러 사흘씩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가을장마라 하나 기상청은 애써 장마가 아니라 한다.

왜 장마가 아니라고 강변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비가 길게 오래 내리면 장마 아닌가?

옛말에 ‘가을 장마가 오면 곡식이 썩는다’ 라는 말이 있다.

사실 가을 장마는 보기힘든 기상현상이어서 옛날에는 불행을 가져오는 비라고 생각했다.

가을장마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 이런저런 주장들이 있었으나 대개 1990년대 이후 지구온난화로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는 모양이다.

비오기전에 무씨를 뿌리고 배추 모종을 옮겨 심어야 한다는 이웃 어른들의 가르침을 쫓아 태풍 솔릭이 오기 전날 무우씨를 뿌리고 배추 모종을 사서 심었다.

태풍은 오는둥마는둥 지나갔으나 비가 꽤 잦았다.

한 일주일 지난 뒤에도 집앞 텃밭에는 무우 싹 몇 개가 덤성덤성 솟아나 있을 뿐이다.

‘비가 많이 내려 씨가 녹았나 보다’

열심히 밭을 갈아엎고 또 씨를 뿌렸다. 또 비가 많이 내렸다.

가을장마란다.

‘읍내 가서 무우씨를 또 사와야 하나?’ 걱정이다. 며칠 더 지켜보자.

무지랭이 농부가 애꿎은 장마 탓을 하고 있다.

장마를 가리키는 우리말에 재미있는 표현이 많다.

개똥처럼 거름이 되는 좋은 오뉴월 장마를 개똥장마라 하고, 여러 날 동안 억수로 내리는 장마를 억수장마, 초여름에 치는 누에가 오를 무렵에 오는 장마를 고치장마, 초가을에 비가 오다가 금방 개고 또 비가 오다가 다시 개는 하는 건들장마, 장마철인데도 비가 아주 적게오거나 갠날이 계속되는 마른장마 등이 있다.

‘3년가뭄은 견뎌도 1년 장마는 못견딘다’

‘장마 끝물 참외는 거저 줘도 안먹는다’

‘가을 장마에 다 된 곡식 썩는다’ 는 속담도 있다.

올해 우리 군정에도 유난히 장마가 잦다.

갈사에 내리친 장맛비에 900여 억원을 물려주고, 대송에 들이닥친 가을장마에 450억원을 내놓아야 한다.

비 올줄 몰랐을까?

산골 무지랭이도 여름에는 비 내리고 겨울에는 눈 내린다는 걸 안다.

하동을 천지개벽 시킬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비 내리고 눈 내리는 어려움을 에상치 않았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성취의 의욕이 과하여 눈앞의 장애를 과소평가했는지 모르겠다.

미해군 특수부대는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지역에 있는 민간가옥을 급습해 빈라덴을 사살했다.

CIA 전문가들은 빈라덴이 있을 확률을 80%, CIA 현장요원의 의견은 95%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레드팀’에게 정보분석을 맡겼다.

CIA요원이 찾아낸 빈라덴 은신처 추정가옥에 실제로 그가 있을 가능성을 ‘레드팀(Red Team)'에서 따져보니 빈라덴 확률 40%, 마약상 확률 35%, 쿠웨이트 무기상 확률 15%, 빈라덴 친척확률 10%가 나왔다.

레드팀에서 확률 40%라면 매우 높은 수치라 한다.

그래서 빈라덴 사살작전이 결정되었다.

레드팀은 반대편 입장에서 계획의 허점을 분석하는 조직이다.

정책이나 작전을 만들고 집행하는 청군(Blue Team)이 세운 계획의 허점이나 문제점을 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외부자 시선으로 정책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레드팀을 설치하는 기업이나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적어야 산다(적자생존)’, ‘시킨대로 한다‘는 공무원 들의 정책수립의 허점과 문제를 들추어 낼 수 있고, 시장, 군수의 일방적 지시에 의한 즉흥성의 위험도 피해나갈 수 있다.

최근 대송산단 관련보도에 따르면, “하동군 의회가 450억 추가 PF 대출 승인을 놓고 전문가 등을 참여 시키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대출기관인 한국투자증권에서 디폴트(default-지불중단)를 선언할 경우 대출원리금을 즉시 상환해야 하는 등 사업정상화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의회에서 승인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도내용처럼 진행된다면 십중팔구 450억원을 추가 보증하여 대송산단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군의회가 특별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정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전문가, 군민대표를 특별위원회에 참여시킨다는 방안에 적극 찬성하지만 이들의 참여가 구색 맞추기에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대송이 가진 문제가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무었인지?

근본적인 처방없이 단순히 450억원의 빚 보증에 동의할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면 우리는 또다시 겨울장마를 맞아야 할지 모른다.

하동군 의회가 이번 참에 대송뿐만 아니라 갈사, 두우 등 산업단지 전반에 걸쳐 제대로 짚어보는 정면돌파의 문제해결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이번에 구성하는 특별위원회가 오바마의 레드팀처럼 갈사, 대송 등의 문제를 반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대책을 세워주었으면 한다.

어제도 비가 내렸다.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가을장마는 길지 않을 것이다.

시련없이 자라는 큰 나무는 없다. 갈사의 시련도 대송의 시련도 하동굴기의 그날을 위한 하늘의 안배일런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걸어가는 것은 다르다“

산골 무지랭이가 앉아서 용쓰는 것이 현장에서 부딪치는 관계자들의 생각을 따라갈수 없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에서 글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