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나라 정치판은 ‘수구꼴통’이니 ‘종북좌빨“이니 하며 서로 싸웠다.

수구골통은 보수 우익 정치인을 지칭하고, 종북좌빨은 진보 좌익 정치인을 의미했다.

나는 오랜세월 스스로 진보적 정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우리나라가 크게 변혁할수 있다고 믿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거대한 보수와 진보 양당의 구태의연한 패권정치를 보면서 이나라에 중도적 가치를 지닌 정권이 태어나야 좌우로 크게 갈라진 국민을 통합할수있다고 믿었고, 안철수로 대표되는 중도세력에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박근혜 탄핵과 촛불집회를 거치면서는 보수정권이 저질러 놓은 국가적 적폐를 청소하기 위해서는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촛불세력이 집권해야 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꼰대도 아니요 수구꼴통도 아님이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이 땅의 많은 깨어있는 지식인들과 뜻을 같이하는게 스스로 멋져보였다.

그런데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혼란이 왔다.

광풍이 되어 불어닥치는 민주당 열풍이 그리 탐탁치 않았다.

중앙에 예속되지 말고 우리끼리 우리 살림을 잘살아보자는게 지방자치인데....

많은 사람들이 문통의 평화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려 휩쓸려갔다.

평소 수구꼴통하며 치를 떨던 나는 당연히 그 바람에 떠다녀야 했는데 ...

왜 탐탐치않은 마음으로 선거판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자칭 진보적 세력이라면서 왜 속마음은 달리 놀았을까?

내가 청바지를 입은 꼰대였을까?

겉으로는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것처럼 하면서도 속은 서서히 꼰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평생을 가족을 부양하고 직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해 온 60대의 나에게 이제 ‘개저씨’ ‘수구꼴통’ ‘꼰대’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집안에서는 ‘삼식이’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불리며 경제권이 사라진 중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기에 세상은 우리를 이렇게 비하하는 것일까?

‘꼰대’라는 말은 아버지나 선생님, 나이 많은 사람을 비꼬는 은어 비속어다.

그러다가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고정되어 이를 어린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훈계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없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꼰대의 생물학적 나이는 50세 중반 이후를 주로 말한다.

사람은 대부분 50세가 넘어서면 나름대로의 주관이나 가치관이 확고해져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않고 자기주장만 강하게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세상은 변하는데, 새로운 사조가 밀려오는데 자기가 경험한 옛것에만 집착해서 젊은이들을 나무라기만 한다.

“우리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야.. 요새 애들은 왜그러는지 모르겠어....”

우리 세대는 자신이 성장해온 방식에 익숙하다.

그 방식으로 살아오면서 나름대로의 성공을 맛보았다.

다들 “꼰대”라고 비아냥대지만 몇 십년동안 살아오면서 몸에 익힌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않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렸다는걸 깨닫는게 쉽지않다.

지금까지 잘해왔다는 생각을 마음 한켠에 품은채 어설프게 청바지만 입고 있었다.

얼마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가족 모임이 잦아졌다.

70대 형님뻘과 자리하는게 부담스러워 자꾸 자리를 피하는 동생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 형은 완전히 태극기부대인데. 물면 놓지않아.”

“꼰대”의 반대말은 “꼰대였다”라 한다

고정된 관념과 확신이 틀릴수 있음을 깨닫는데서 꼰대탈출이 시작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게 없다는 불가의 가르침 익히 알면서도 막상 현실에선 그런 유연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언젠가 군수께서 젊은 직원들과 소통한다고 진주 어느 생맥주집에서 술잔을 주고 받았다.

지나간 이야기 하다가 돌아가면서 한 말씀씩 하게하고..

사실 돌아가가면서 한 말씀 하는게 엄청난 부담이다. 동료도 의식이 되고 높은 사람에게 점수도 따야하고..

그러다 마지막 순서로 뻔한 훈계 한 말씀하시고 마쳤다.

그 뒤로는 이런 모임이 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청바지입고 겉모습은 그럴듯하게 폼을 잡았지만 직원들의 마음은 열려지지 않았던 탓이다.

내가 꼰대가 되지않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의 변화와 시대조류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글이다

요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순임금이 다시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한 말이다.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아직 은미하니 정성을 다하여 하나로 하여야 진실로 그 中을 잡을 수있다.

中이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것으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中을 잡기는 매우 어렵다.

中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부단한 성찰과 각성으로 中을 쫓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군청에 있을 때는 안그랬어..’

‘내가 그 때 그거 해내느라 엄청 고생했지...’

꼰대들의 술자리에서 흔히 들려오는 이야기이다.

무용담으로 먹고사는 꼰대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청바지를 아무리 입어도 꼰대는 꼰대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시대이다. 그들을 후원하고 격려하는게 나의 역할임을 깨닫자.

70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도 권력주변에서 단체장 한자리 하려고 어슬렁대는 가까운 이들에게, 오랜세월 공직에서 폼잡고, 또 어떤 단체를 연이어 맡으며 여전히 권위적 행보를 이어가는 불쌍히 늙은 세대에게 이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