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아래 마늘밭에서 마늘 단을 묶는 노인에게는 어느 당 무슨 후보의 명함보다 마실 물 한 모금이 더 간절했다. 차 안에 내가 마시려는 그 물이라도 가져다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선관위에 전화를 하니 선거법에 저촉이 된다고 하여 그 물 한 병을 못 드렸다. 선거가 다 끝난 지금 그때 그분께 물 한 병을 못 드린 게 내 마음에 가시로 박혀있다.

5월 15일 예비후보 등록을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선거법을 준수하면서 법정선거 비용 내에서 선거를 하는 것을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았다. 그래서 캠프관계자들에게도 어떠한 경우라도 불법은 안 된다는 것을 대명제로 내세웠다. 그러자 캠프자체가 구성이 되지를 않았다. 선거법에 따라 선거를 한 사람 치고 당선된 일이 없으니 그런 헛수고는 아예 하지 말라는 게 한결 같은 선배지인들의 충고였다.

“이왕 나왔으니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일단 붙고 보라!”

지나고 보니 이분들의 충고가 헌법 같다. 초보자인 내가 고수들의 비법을 무시하고 너무 똥고집을 부렸던 같아 미안하기까지 하다.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이라는 말이 용납이 안 되어서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히며 심지어 등까지 돌리는 일도 있었지만 지고 보니 인정하기 싫은 이런 부분도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선거에서는 당선이라는 결과가 중요하지 그가 얼마나 깨끗한 선거를 했느냐는 과정들은 들을 필요도 물을 필요도 없다는 그분의 말씀을 맞다고 해야 되니 더욱 더 처참하고 씁쓸하다.

“타 후보는 사탕도 주고 물도 준다. 경고 몇 개 받아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내 시키는 대로 하라” 는 간곡한 그 조언들을 일언지하에 묵살했다. “누구는 밥도 사고 술도 사고하는데 그리 못 하면 차라도 한 잔 사야 된다.”는 말에 버럭버럭 화를 냈다. 그런데 그게 그럴 게 아니었던 것 같다.

5월 10일에 당 공천을 받아서 개소식을 할 시간이 없다고 하자 선배와 지인 몇 분이서 화분과 화환 대신 봉투를 내밀었는데 이것들도 되돌려 보냈다. 동창과 지인들이 찾아 와도 밥도 같이 안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분은 후원을 하시고 싶다고 우리 사무실까지 찾아오셨는데 사무장이 안 된다고 자기 선에서 돌려보냈다고 한다(난 아직도 이분 얼굴도 성함도 모른다.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선거를 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는 말이 법정비용으로는 선거 자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더 4,700만 원짜리 선거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까지 잡힌 공식회계가 약 4,500만원이니 캠프구성 과정에서 든 준비비 200만 원 잡더라도 공식적인 법정비용 한도 내에서 선거를 치룬 것이다. 이번 결과만 좋았으면 나는 이것을 도의원 당선증보다 더 자랑하고 싶었다.

진실로 양심의 법과 사회의 법을 지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솔직히 좀 시건방진 이야기지만 나는 이 대원칙을 놓고 절대자 앞에 마주서고 싶었다. 그분도 나를 시험하고 나도 그분을 시험하자고 기도했다. 표가 눈앞에 어른어른 보이는데 뭐하고 있느냐고 야단칠 때도 두 눈을 감고 이렇게 기도를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진 것 빼 놓고는 정말 신나고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특히 인간의 본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던 게 제일 큰 수확이었다.

보행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땀을 닦아가며 힘들게 투표장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투표권 참정권이라는 게 그토록 신성한 것인가를 웅변해 주는 실로 장엄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몇 푼 안 되는 그 알량한 돈으로 그의 전 인격이나 다름없는 이 표를 매수한다? 이것은 참으로 중대한 범죄다. 그러니까 표는 팔아서도 안 되고 사려고 해서도 안 된다.

하동지방선거에서 법정선거비용의 X 배, XX 배가 더 든다는 것이 어디 말이 되는 얘긴가? 어찌 그러고도 우리 하동이 바뀌고 이 사회가 바뀌기를 바라는가? 유권자가 바뀌지 않는 한 후보자는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떨어지려고 작정했느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까지 선거원칙을 지킬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거에서 가장 기본인 그 주권을 돈에다 팔아서는 안 된다. 4년마다 돈으로 표를 사려고 하는 자의 사특함에 속아 넘어가면 하동에 변화는 영원히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선거에서 당선자들은 당선증을 받는 순간 다음 선거를 바로 준비한다고 했다. 그러면 후보 때 들어간 본전을 어디서 어떤 형태로든 찾아서 챙겨야 다음 선거를 대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후보일 때 뜯어 먹을 대로 뜯어 먹고 그가 나중에 당선되어 청렴결백하기를 바란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작태인가!

선거는 올바른 판단과 정확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올바른 판단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돈이 후보자의 진정성이나 도덕성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후보 때 법을 무시하고 돈 가지고 표 장난을 치는 사람에게 권력까지 쥐어주는 것은 100% 유권자들의 책임이다. 어떤 면에서는 둘 다 공범자다. 아직도 후보자들에게 봉투를 요구하는 기자가 있고 유권자가 있다고 들었다. 왜 유권자가 후보자를 더럽게 만들고 당선자를 떳떳한 공적활동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가?

정치꾼은 다 사기꾼인데 그 판에 왜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머리가 아팠다. 정치판이라는 게 마치 햅쌀로 밥을 지어서 쓰레기통에다 처넣고 지근지근 밟아서 그걸 허겁지겁 두 손으로 퍼먹고 있는 것으로 내 눈에 비췄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아나기 위해서는 같이 그렇게 나뒹굴어야 되는데 머리와는 달리 내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는 아직 준비가 덜 된 탓인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기간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후보자입니까? 기자입니까?”였다. 이는 되려고 나왔느냐? 떨어지려고 나왔느냐? 이 말이었다. 물론 후보자와 기자의 입장은 정반대일 수 있다. 아니 어찌 보면 정반대다. 그런데 나는 후보자이자 기자이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어느 사람을 봐도 부끄럽지는 않다. 특히 물 한 모금 사탕 한 개도 못 얻어먹었음에도 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주신 7,888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선거의 목표는 오로지 당선인데 당의 공천을 받은 입장에서 그 뜻을 이뤄드리지 못한 점이 더불어 민주당과 당을 성원해 주신 유권자들과 지인들에게 한없이 죄송하다. 그런데도 선거비용 한도를 넘지 않기 위해 낙선인사 문자발송과 감사 현수막 게시를 이글로 대신하고자한다. -미생지신(尾生之信)으로 보일지라도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하동읍 이상숙(010 7300 6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