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람만큼 잔인한 동물이 또 있을까? 가끔은 다소 이상한 질문들을 던진다.

수많은 동물들 가운데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 또는 그 마음을 인정(人情)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같지 않은 그런 경우에 우리는 ‘인정머리가 없다’거나 같은 말로 ‘몰인정 (沒人情)하다’는 표현을 쓴다.

하찮게 여겨서 그랬을까. 인정머리가 없고, 몰인정하기가 짝이 없어 보였다.

아니, 나아가 그동안 입었던 은덕(恩德)을 모르고 철저하게 배반(背反)을 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행위로 보여졌다.

수없이 이해를 하려 애를 써보고, 수백번 양보를 하더라도 적어도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사람들은 이래서는 안되지 싶었다.

13일 늦은 오후에 한통의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간 현장의 모습을 보고는 그 분노를 감당하기 조차 힘이 들었다.

국도 19호선 4차로 확장공사 악양면 구간 평사리 공원과 무딤이들 사이의 직선도로변에서 무참하게 난도질 당한 아름드리 벚나무들은 이미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자려진 가지마다 금방이라도 터뜨릴 듯 한껏 부풀어 오른 꽃망울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어른 두어사람의 품은 되어야 안을 수 있을 만큼의 그 큰 벚나무들의 몸둥이는 사지가 송두리째 잘린채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30년쯤일까. 아니 40년쯤은 되었을 것이다. 그 오랜 세월을 뭇사람들의 오감(五感)을 만족시켜 준 것 밖에 없는데 그것이 죽을 죄였단 말이던가.

그 모습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결국 현장에서 벚나무에 행해지던 무참한 행위는 일단 중단이 되었으나 그것은 비난 여론을 잠시 피하기 위해 톱의 엔진을 잠시 꺼 둔것일 뿐이다.

공사 현장 사무실을 찾아가 확인해 보니 앞으로 그곳 외에도 국도 19호선 악양~화개 구간은 4~5곳에서 더 그같은 인정머리 없는 행위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공사 관계자는 ‘이미 벚나무를 베어내도록 설계가 된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초에 했었던 약속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2006년쯤이던가, 이후에도 여러번 국도 19호선 4차로 확장공사와 관련하여 찬반여론이 팽팽하던 그 즈음에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하동군은 자신있게 그리고 분명하게 약속을 했었다.

‘국도 19호선 하동~화개 구간은 한번오면 다시 찾고싶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길이라는 자부심을 유지하면서 내방객들에게는 편리한 접근성 제공과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개발에 따른 원활한 물동량수송까지도 충족시킬수 있는 최고의 도로가 될수있도록 최선을 다할것이다’라고....

더불어, 수차례에 걸쳐 “4차선으로 확장을 하더라도 벚꽃 길은 크게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는 어쩌면 장담을 했었다.

어디 그 뿐이던가, 더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하동~화개간 공사 구간에 있는 1700그루의 벚나무 가운데 1600그루 가량은 그대로 두게되고 도로가 굽은 부분에 있는 나무 100여그루가 문제가 되는데 그것도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옮겨서 심게 될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 어쩔수 없이 베어 내어야 하는 그런 벚나무는 사전에 대체할 벚나무를 준비를 해 두었다가 심는다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라고도 했었다.

그런데 공사 현장의 상황은 이같은 약속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것도 ‘하동군에서 교차로 부분이 조기 개통 될수 있도록 서둘러 달라’고 했다는 관계자의 말에 순간적으로는 하동군에 어떤 배신감 마져 들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국도 19호선 4차로 확장공사 악양면 평사리 구간 “생명의 땅! 土地‘ 최참판댁 무딤이들 앞에 무참한 모습으로 즐비하게 널부러져 있던 그 벚나무들에게 참으로 미안했다.

오랜 세월을 그 벚나무들은 하동사람들에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물길과 꽃길’을 열어 주었고, ‘별천지(別天地)’를 선물해 주었으며, ‘대한민국 알프스’를 그리게 해 주지 않았던가.

설령 작금의 상황과 같이 최악의 경우를 맞을 수 밖에 없다손치더라도 ‘이미 만삭으로 불과 며칠이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자태를 만인(萬人)들이 선물할수 있었을 터인데, 생(生)에 마지막 한번의 꽃이라도 피울수 있도록 최소한의 배려를 해줄수 없었을까.

그 오랜 세월을 마다하지 않고 해마다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사람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려 애써왔던 그 벚나무들에게 결과적으로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짓을 그렇게 서둘렀어야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