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상대학교 외래교수

지난 9월 23일 하동에서는 하동군과 하동문화원 그리고 경향신문이 주취하고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이 주관한 ‘정안과 팔만대장경’이란 주제의 국제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해인사에 현존하는 팔만대장경의 조성에 하동 출신 정안이 기여한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하자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행사였다. 정안에 대한 역사적 전거로는 󰡔고려사󰡕 권100 ｢열전｣ 13 ‘정세유[정숙첨정안] 전’과 󰡔고려사절요󰡕 제17권 고종 신해 38년의 기록 및 안정복의 󰡔동사강목󰡕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하동편｣ ‘인물조’ 등이 일차적 자료이다. 유물적 자료로는 팔만대장경과 그 보유판 또는 사간판으로 분류되는 경판인 불교경판 5종과 정안의 발문 경판 1종이 있다. 이런 자료를 토대로 일본인 학자 이케우치 히로시가 1924년 첫 연구 성과를 제출한 이래 지금까지 상당한 분량의 연구실적이 축적되어 있다. 나아가 정안의 활동무대에 대한 연구는, 그 집안의 본관지이자 식읍지인 하동의 정안산성과 그가 별장으로 사용하다가 대장경 판각의 장소로 전환한 분사남해대장도감의 소재지로 추정되는 남해의 관음포 인근 전(傳) 망덕사지 등에 대한 발굴 작업도 이루어졌다. 다만 전 망덕사지의 발굴에서는 정안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당한 성과를 발굴하였지만, 정안산성은 그 중요성에 비해 아직까지는 1차 시굴조사 정도만 진행되어 아쉬움이 있다. ‘정안과 팔만대장경’ 국제컨퍼런스는 정안과 팔만대장경이 우리 역사와 하동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대단히 중요한 행사였다. 그런 만큼 컨퍼런스의 외부적 모양새 뿐만 아니라 내용도 충실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행사내용과 관련해서는 유감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 이 행사의 주관처는 행사의 세부적 주제와 발표자를 선정하면서 공정성과 전문성 중심으로 분야별 전문가를 위촉했다기보다는 조직 내부적 인물을 집중적으로 배치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본 행사의 취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주제로 외국인 발제자를 포함시켜 주관처의 학술지 발간을 위한 포석이 깔려있다는 느낌도 있었다. 실제로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국내에 전문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사에서 배제되었다. 또 굳이 언급하고자 하면, 이번 행사에 투입한 총 비용이 얼마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발표자들에게 주어진 보수는 지금까지 국제 단위가 아니라 국내 단위의 학술행사에서도 들어본 경우가 없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것은 학자를 배려하는 최소한의 예의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 비용에 대한 사용 내역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발표자 중에는 자기의 전문분야가 아닌 내용까지도 언급하면서 자신이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보이기도 했는데, 그러다보니 발표논문에서 상당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사실이 나타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원문의 번역에서 ‘일암거사 정분 공은 노계정에서 양회하고 있다. (노계정)은 마을에 있으면서도 경치가 빼어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정자의 편액을 살펴보니 곧 없었다. 그 까닭을 정분에게 물어보니, (정안이) “다만 사(진각국사)께서 이름을 지어주시는 것을 기다릴 따름입니다.”라 대답하였다. 이에 내가 정자의 아름다운 경치를 살펴보고 이내 편액의 이름을 세심이라 지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발표자는 보충설명에서 ｢노계정｣이 하동 어딘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청중들에게 그 위치를 비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달라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이 문장의 원문은 ‘逸庵居士鄭公奮 養老溪亭 雖在里閭 形勝可愛 尋其額 則滅如也 問其故 對曰 只待師之名之耳 予相其佳致 乃名之曰洗心’이라 하였다. 그러면 번역은 당연히 ‘일암거사 정분 공이 시냇가에 정자를 짓고서 양로(늙음을 보양)하고 있었는데, 그 정자가 비록 마을 안에 있었지만 풍광이 사랑할 만 하였다. 현판을 찾아보니 없으므로 그 까닭을 물어보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다만 대사께서 이름 지어 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그 아름다운 경치를 살펴보고서 이름 지어 세심정이라고 하였다.’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한문의 번역에서 한글의 표현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養老溪亭’이라는 구절의 번역이 인용문의 핵심문제를 완전히 엉뚱하게 만들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 번역문의 끝에 수록한 시의 마지막 구절은 번역자가 저자의 의미를 파악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글로 표현하여 이해가 되지 않는 번역은 잘못된 번역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논문의 각주 32)의 원문에 대한 번역도 한문에 대한 기초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의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번역문을 읽어서는 그 문장의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번역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오역이다. 굳이 자신 없는 내용을 인용하고 번역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발표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유형의 번역상의 오류가 부지기수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학자들이 한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번역문을 보고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등골이 서늘하다! 이렇게 해서 정안과 팔만대장경에 대한 진실 규명과 기념사업이 온전하게 진행될 수 있겠는가? 실로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