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 비 문 찬인

지금에야 우리나라 전기 밭솥이 이웃 중국이나 북한에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지만 1980년대 일본 가는 길이 있으면 꼭 사와야 하는 게 있었다.
코끼리 밥솥이다.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의 밥솥 싹슬이가 일본 언론에 보도될 정도였다.
전기밥솥 이후로 밥 짓기와 보관하기가 밥솥 하나로 충분하지만 옛날에는 솥에서 지은 밥을 보관하는 밥통이 따로 있어야 했다.
봄, 여름에는 질그릇이나 나무로 밥통을 만들었고, 가을 겨울에는 보온효과가 있는 놋쇠, 사기, 자기로 만든 밥통을 썼다고 한다.
부엌의 여러 도구 중 다른 그릇들은 본래 용도 외에도 여러 가지로 활용되었지만,
밥통만은 오직 밥 담는 데만 쓰여졌다.
그래서 한가지 일밖에 할줄 모르는 사람들을 조롱할 때 ‘밥 통같다’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밥통을 철로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도 이웃나라 중국에서 해고 우려가 거의 없는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체 직원들을 철반완(鐵飯碗, 톄판완)으로 부르기 시작한데서 유래된 것 같다.
중국에서는 철 밥통보다 쎈 황금밥통 금반완(金飯碗)도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부터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을 부정적으로 지칭할 때 ‘철 밥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최근 살충제 달걀, DDT 닭, 간염소시지등 일련의 식품포비아로 세상이 시끄럽다.
함께 ‘무능력, 면피행정의 민낯을 보여주었다’고 공무원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은 여전(如前, 전과 같다)하다는 불신이다.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보름여 앞선 네델란드의 살충제 계란 때 ‘우리는 안전하다’고 큰 소리 치다가,
막상 우리나라에서도 살충제가 검출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기만 했다.
농림식품부, 식약처, 지자체 어느 한 곳이라도 제대로 대응하는 부처가 없었다. 서로 책임을 미루고 회피하기만 했다.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살충제 달걀은 안전하다. 하루 2.6개씩 평생 먹어도 된다’가 전부였다,
물론 안전성 여부에 대해서도 전문가 사이에 위험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만만치 않게 일고 있다,

이쯤이면 철 밥통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공무원들의 관료주의는 여전하고 그들은 비능률, 책임전가, 비밀주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살충제 달걀 백서를 만들어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한다.
겉만 살펴본 지시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대통령이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를 찬찬히 뜯어보면 문제가 어디 달걀에만 있는 것인가? 온갖 분야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때마다 백서나 만들고 말 것인가.
찾아내서 고치고, 그래도 문제가 발생하면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의 민낯’이란 칼럼을 보고 씁쓸한 마음이다. ‘아직도 철 밥통으로 불리고 있구나.’

하동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을 읽었다.
‘이화만사성프로젝트’가 크게 눈길을 끌었다.
제목만으로는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뉴스라서 자세히 읽어보니 오래가두었던 칭찬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이화만사성프로젝트’
누가 지은 이름일까? 놀랍도록 철학적이고 격조있는 이름이다,
요즘말로 하면 클라스가 남다르다. 차이나는 클라스다,
이화(梨花)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이조년의 시에 나온다,
배꽃이 흐드러지고 달빛이 교교히 흐르는 만지 배 밭.
그 배 밭이 이 프로젝트의 주 무대이자 주인공이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를 입안한 공무원은 한 술 더 뜬다,
배꽃과 매화 두 꽃이 만난다. 그래서 이화(二花)다.
배꽃의 우주와 매화의 우주가 시차를 두고 만나니 만사가 형통히 이루어진다.
누가 있어 이토록 우주의 이치를 관통하여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이름을 지었단 말인가?

만남은 계속된다,
하동과 광양이 만난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만남이다,
물길을 두고 서로 힘을 합하여 이 프로젝트를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숨은 이름이 Re-화만사성이다,
Re는 재생한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때 섬진강변 사질양토로 옥답을 일구었던 만지의 옛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뜻이 아닌가,

하동은 꿩 먹고 알 먹고이다.
매화꽃이 한창이면 강 건너는 선남선녀들이 갈 곳이 없다.
하동으로 오시라고 비단 깔아 모시는 프로젝트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업비도 만만찮다 40여억 원 정도 드는 모양인데 이중 30여억 원이 국 도비 지원인 모양이다
제발 이름에 걸 맞는 사업들이었으면 한다.
단순히 기반시설이나 갖추는 사업이 아니고 섬진강의 명물이 되었으면 한다,

군청에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이 프로젝트를 구상한 사람이 누구냐고?
담당과장께서 직원들이 함께 의논하였다는 대답이다,
식품 포 비아로 시끄러운 이 와중에 우리 하동의 공무원들은 제대로 일하고 있나보다. 마음이 든든하다,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이름을 지었을까?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한 공무원을 누가 철 밥통이라 손가락질 한단 말인가?
요즘 공무원 되는 게 옛날 과거 합격하는 것 보다 더 자랑스럽다,
대학의 우수한 인재들이 공무원으로 몰린다. 우리 하동의 가장 뛰어난 인력 집단이 군청이다,
이왕 하동의 미래를 그들에게 맡겼으니 무한신뢰로 힘을 보태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