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무지개나 아침노을을 보거나, 서산에 구름이 걸리거나, 햇무리나 달무리가 나타나거나, 동풍이 불거나 별이 낮게 보이면 비 올 징조라고 좋아들 했다. 제비, 갈매기, 잠자리가 낮게 날거나, 연기가 집 밖으로 잘 빠져나가지 않거나, 갓난애가 칭얼대고 또 소금이 눅눅해지면 이것도 바로 비 올 징조라고 생각했다.
또 청개구리가 울거나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 오르거나 연못이나 내에 거품이 많이 일면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런 날씨점에 때 맞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내리면 단비, 약비, 꿀비, 자우(慈雨)라고 어깨춤을 쳤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애가타서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기우제도 지냈다.
그런데 이런 비는 문학에 있어서도 자주 그리고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자연현상 중의 하나다. 음울이나 불행, 비극의 은유나 상징 아니면 그 은유적 장치나 배경으로 도 추억을 이끌어내 주는 매개물로, 더 하나 보태보면 ‘비에 젖은 욕정’ 이란 말이 있듯 인간의 원시적 욕정도 암시한다.
그런 예를 들어본다. 1950년대의 대표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손창섭의 작품에는 비 내리는 장면이 유별히 자주 나온다. 이는 곧 작중인물의 삶의 허무와 절망감을 간접 설명해주는 상징이었다. 이와 같은 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도 나타난다. 주인공이 애인과 헤어지는 밤, 군대가 후퇴할 때, 그리고 애인 캐더린과 사별하고 병원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 등에는 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말하자면 침통한 분위기나 불행 그리고 비극의 은유요 상징이었다. 소설속의 복선이라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난다.
첫 장면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결국 끝에 나오는 인력거꾼 김첨지 아내의 죽음을 예고하는 복선이었다. 성적 욕정의 상징적 은유로는 김유정의 <소나기>에서 나오는데, 남녀 정사 장면에 맞추어 밖에서는 세차게 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외국 작품으로는 서머싯 몸의 <비>다. 장편 아닌 중편 정도이지만 전편을 통해 열두 번 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인간의 원시적 욕정을 상징한 비이다. 그리고 추억을 이끌어 내는 매개로서의 비는 시나 소설에서 자주 보이고도 있지만 특히 대중가요에서는 마치 어느 가사에서 나오듯 “조용히 비가 내리면 그 사람 생각이 나네.” 식이 작사의 공식 비슷한 불문율이 되어있다.
비는 이렇게 유용하고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비가 내려 대수(大水)나 홍수가 나면 그 어떤 자연현상보다도 극심한 자연재해를 입히는 원흉이 된다. 그런 홍수의 파괴성이나 위력을 일찍부터 경험한 고대 바벨론인의 창조설화인 ‘에누마 엘리쉬’, 수메르인의 홍수설화로 왕 이름을 딴 ‘길가메시 서사시’, 그리고 이와 유사한 구약 창세기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 등등이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홍수에 관한 지명전설이 다른 전설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도 결국 홍수에 관한 위력을 은연중 나타내 준 경우라 본다. 정말 필요할 때와 필요치 않을 때를 가려 비가 와 준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싶지만 역시 비는 비의 마음이고 하늘의 뜻이라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