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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151> 진교면 진교리 상평마을일명 비석거리로 불리며, 진교면의 행정 중심지
장성춘 기자  |  hdnews9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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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4  13: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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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교면 진교리의 근원(根源)은 민다리 비석거리(1716년), 상평촌(1864년)에서 1882년에 상평촌과 하평촌으로 분리가 되었다.
상평마을은 일명 비석거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조선왕조 1714년 숙종 40년 8도에 지진이 일어나고 한발(旱魃)로 흉년이 들어 이 지방 주민들이 굶주림을 당하자 당시 경상도 관찰사 홍우령이 조정에 품의하여 구휼미 2,000석을 방출 기민을 구한 선정에 보답코져 송덕비(頌德碑)를 상평마을에 세운데서 연유되었다.
진교면사무소가 일제시 현 위치에 건립되어 진교면의 행정 중심지역으로 성장, 발전하였고 복지회관, 소방파출소도 자리잡고 있다.
진교리 상평마을을 둘러보면, 경상도 관찰사 홍우령 송덕비를 1716년에 건립하여 상평마을 399번지 앞 도로변 언덕바지에 세웠다 이 비가 연유가 되어 상평마을은 비석거리로 불리어 왔다. 이 비는 1987년에 마을입구 삼거리에 옮겼다가 1994년 4월1일 진교면 사적비 정화사업으로 하평 민다리공원 안에 이건하고 동 구황휼민비(救荒恤民碑)의 후면 비문이 마멸되어 이를 남양홍씨 해봉공 종친회에서 문헌을 받아 용당 권영집씨가 이를 다시 새겨 공적을 보존하고 있다.
1930년대 초 일제가 신장로 개설로 가설된 교량으로 제1 상평교가 있는데 이 교량은 태평양전쟁 때 일제가 다리 난간의 철구조물까지 절단하여 갔다. 해방후 볼품없이 이용하여 오다가 1994년 6월에 새롭게 준공 단장 되었다. 그리고, 남해에서 오는 우회도로와 주차장 앞에서 남해고속도로 진입로 선상의 관곡천에 가설되어 있는 교량을 제2 상평교라 부른다.
이밖에 월운리 갑정마을에 있던 삼층석탑을 1958년도 당시 정복덕 면장이 면사무소 경내로 옮겨 복원하였으며 현재 유형문화재 192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일제 때 설치된 기관으로 동양척식 주식회사의 곡물검사와 태평양 전쟁시 공출제도를 마련하여 벼, 목화 등 농산물을 착취하는데 대가없이 검사는 엄격하여 농민들을 많이 울렸다는 곡물검사소(현 농업기술센터 진교면 농민상당소), 1913년 진교 공립 심상소학교로 설립하여 일인(日人)의 자녀교육을 전담하다가 광복후 분교장으로 이용되어져 왔으나 1984년에 민간에 불하 된 심상소학교 등이 있다.
현재 진교면 진교리 상평마을에는 신용길이장(70)을 비롯해 298세대에 686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장성춘기자. 블로그naver.com/ hdnews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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