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 비 문 찬인

얼마 전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다.
박근혜대통령 탄핵으로 연말에 치루어져야 하는 선거가 앞당겨진 탓 이었다.
선거기간 중에 유력한 다섯 명의 후보를 낸 문중은 때 아닌 난리가 났다고 한다.
‘문중의 역사상 한 번도 왕이나 대통령을 내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이 5천년만의 기회다’
‘문중이 똘똘 뭉쳐 우리도 왕족이 되어보자’
대충 그런 취지로 문중 결집을 시도했던 모양이다.
왕족이 되면 좋을까?
글쎄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왕족이 된다고 좋을 일이 뭐 있을까?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것도 잠시, 제대로 대통령 노릇 못하면 온 집안이 부끄러워 질 판이니 글쎄다...

후보들 중 누가 나라 다스리기에 가장 적합할까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같은 문중이니까 찍어주자.’
‘여기는 경상도이니까. 누굴찍자’
‘나는 보수니까 누굴 찍어야 겠다’
‘절마가 되는 꼬라지가 보기 싫으니까 이번에는 일마를 찍어야 겠다’
이런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대표자가 선출된 것이라면 투표라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이요 이율배반적인 것인가?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투표라는 절차를 거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인물에 대한 선호가 능력이 아니라 인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최선(最善)의 선택보다는 차악(次惡)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직접 민주정이 한창이던 그리스 아테네에서 표가 가장 많이 나오는 사람을 10년간 외국 추방을 시켰던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를 시행하였는데, 이 도편투표의 숨은 의미도 차악의 선택을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

요즘 대의제 민주주의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내가 사는 하동에 갈사산단이라는 대규모 개발프로젝트가 추진 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되는 게 없다.
결국 감사원에서 특정감사라는 이름으로 들여다보고 몇몇 관계자를 문책토록 하는 모양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십 수 년 동안 의회는 아무것도 몰랐을까?
그간 집행부를 감시, 견제한다던 의회는 무얼 했을까?
행사장 단상에 의젓하게 앉아있던 의원 나리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도비가 기억하기에도 두세 번 갈사특위를 구성하여 조사활동을 한다고 난리를 쳤는데 결론은 항상 용두사미로 끝난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따지고 보면 그 원죄는 군민들에게 귀착된다.
한마디로 투표를 잘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투표가 절대적으로 옳은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출마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사람 중에서 투표라는 절차를 거쳐 대표자를 선택하게 되는데
사람이 좀 괜찮거나 능력이 있으면 출마 자체를 잘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이런 인물이 출마하려 하면 거대 정당의 공천이라는 암초를 만나 출마 자체가 어렵다.
그러니 제대로 된 사람이 출마하기가 매우 어려운데다가 출마자 중에 어느 한 사람에게 투표를 하게 되는데 이 경우 지연, 혈연, 학연 등에 의해 좌우되니까 우리는 최선(最先)이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게 된다.

아무튼 갈사산단의 지연과 혼란도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는 결함중의 하나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군의원을 투표라는 절차에서 가장 표가 많이 나오는 사람을 뽑는다.
우리 동네 사람이니까,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니까, 같은 문중이니까, 같은 동갑내기이니까, 모임을 같이 하니까, 물아래 사니까, 물위에 사니까.
이런저런 이유를 가장 많이 모은 사람이 군수도 되고, 군의원도 된다.
그러다 보니 투표가 꼭 능력 있는, 좋은 사람을 뽑는 제도는 아닌 것 같다.
일을 제대로 안하거나 엉망으로 하는 주민의 대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민소환의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있다 해도 절차가 꽤 복잡할 터이고...
직무유기로 고발하는 방법이 있을 터인데 법적으로 처벌대상이 되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좀 애매하고...
결국은 선거 때 심판하여야 한다.
그런데 투표라는 게 좀 거시기한 것이라서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며칠 전에 어느 의원께서 전화를 주셨다.
의회의 무능을 죄스럽게 생각한다는 취지의 말씀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저런 분도 계셨구나. 하동군 의회 아직도 살아 있구나.’
의회는 회의체이고 의원 개개인은 독립된 신분이다 보니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게 움직여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제 1년여 남은 임기이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분발을해주실 것을 기대해본다.
무소불위의 집행부를 견제할 유일한 권력이 의회이니 믿을 곳은 의회뿐이다.
우리의 기대와 바람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봄날은 간다’
1953년인가? 54년인가? 백설희가 부른 노래다.
이제 대통령도 뽑혔다.
이 봄날에 백설희의 노래처럼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마저 가버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마치 같이 울고 같이 웃겠다며 온갖 공약을 난무하는 후보자들의 사탕발림.
이 노래의 실없는 기약과 다른 게 무얼까?
꽃 편지 내던지는 순간 우리는 갑에서 을이 되고 만다.
당선된 자기야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