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 비 문 찬인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고, 아버지 박정희대통령에 이어 대를 이은 대통령으로 많은 국민들의 기대를 받았는데..
결과는 허무하게도 국회의 청구대로 파면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70여년의 세월동안 제대로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대통령이 몇 없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는 퇴임직전 60%에 가까운 국민의지지 속에 물러났는데 우린 왜 국민적 사랑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퇴임하는 대통령을 볼 수 없을까?
왜 임기 중 사퇴나 탄핵 등의 불행이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것일까?
청와대의 저주일까?
북악산의 기가 강해 어느 누구도 무사할 수 없다는 풍수적 예언이 맞는 것일까?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4.19 이후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고,
윤보선 대통령은 5.16으로 권좌에서 쫓겨났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철권통치 끝에 심복의 총을 맞고 비명횡사 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국가내란죄로 오랜 세월 감옥에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에서 살아남았으나 결국 부엉이 바위에서 자살을 택했다.
박근혜대통령은 탄핵되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몰락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극은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한 스스로의 잘못이었다.
40년 전 70년대의 가치관에 스스로 매몰되어 그 시대에서는 용인되었던 것들이 지금도 용인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국정을 펼친 것이 오늘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국정 농단 세력들은 나라를 불행하게 만든 공범들이다.
구속되거나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그들의 뻔뻔함과 후안무치는 저런 수준의 사람들로부터 다스림을 받았구나 싶어 심한 모멸감이 든다.
세계 초일류기업이라는 어떤 그룹의 젊은 부회장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다 못해 불쌍하다.

옛날에 순장(殉葬)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순장이란 왕이 죽으면 왕이 총애하던 후궁, 시종들과 왕과 함께 영화를 누렸던 대신들까지 한꺼번에 묻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관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여와 가야에서 순장제가 있었다 한다.
특히 부여는 자연재해로 흉년이 들면 왕에게도 책임을 물어 왕을 죽이던 나라였다.
이에 따라 왕이 죽으면 역시 왕에 기대어 살던 많은 이들이 책임을 지고 따라 죽어야 했다.
한때 중국 북쪽을 장악했던 거란족의 요나라에서는 태조 야율아보기가 사망하자 황후가 권신들을 함께 순장시키기도 했다.
이후 순장제는 황제의 측근 실세로 부정축재와 폭정을 일삼던 간신들을 단숨에 제거하는 제도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순장이란 이름으로 제거된 대표적 간신이 중국 청나라 때의 뉴호록화신(和珅)이란 인물이다.
건륭제의 총애를 믿고 뇌물과 부정부패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화신은 일세를 풍미했으나 건륭제가 죽자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다.
건륭제의 뒤를 이은 가경제는 화신에게 20여 가지의 죄목을 열거한 후 건륭제를 따라 순장할지 아니면 대역죄로 죽을지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이에 화신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저택에서는 청나라의 15년 치 예산에 해당하는 막대한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순사(殉死)라 하여 사무라이들이 주군이 죽으면 함께 할복해서 죽는 풍습이 있었다.
순사한 사람은 가문의 명예와 권위를 높여준다는 믿음이 있었겠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숙적을 날리거나 권세를 부리던 실세들을 강제로 실각시킬 때 많이 사용되었다.
심지어는 죽어가는 주군이 후대를 염려해 국가운영에 방해되거나 너무 강력한 세력을 죽이기 위해 유언장에 순사자 명단을 넣기도 했다고 한다.

흔히 정권 말기에 집권당의 지도부에 있거나, 청와대에 근무하거나 내각에 장차관으로 근무하면 순장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정권의 공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도자의 임기가 끝날 때 함께 물러난다는 의미다.
현대의 민주사회에서 정권의 공과에 대한 책임을 지도자와 같이 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질서 수호의지 위반, 권력남용, 공무상기밀 누설 등의 범죄로 파면되었다.
그동안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누렸던 실세들의 방성대곡이 없음은 참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을 잘못 보필하여 이지경이 되었으니 저를 처벌하여 주십시오.’ 하며 석고대죄 하는 청와대 참모들과 측근들이 없음도 참 이상한 일이다.
소위 친박이라며 국정을 휘어잡던 정치인들의 할복자살 소동도 없음이 참으로 이상하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민중은 급격히 성숙하고 있다.
이젠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바뀌어야 할 차례이다.
세상의 변화를 읽어 스스로를 쇄신하여야 한다.
정치권에 뛰어들어 오랜 세월 검은 물이 들어 버렸거나 출세지향의 관료조직에서 잔뼈가 굵어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참에 국가 대 개조 와 적폐청산을 위하여 스스로들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순장의 진정한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