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강석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가리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

돌아가 고향하늘에 맺힌 물되어 흐르며

살던 집 문고리도 온몸으로 흔들어 보리

세상사람 우릴보고 수몰민이라 한다

마을아,무너진 흙담들아,언젠가 돌아가리라 .

너희들 물틈으로 ... 나 또한 한많은 물방울되어

세상길 흘러,흘러,

돌아가 고향하늘에 홀로 글썽이리

조상님의 벌초가 끝나면 민족의 명절인 추석맞이로 분주해진다.

하동호로 수몰된 고향집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해 살고 있지만 명절이 오면 옛 고향 마을과 정든 사람들이 더욱 그립다.

추석과 같은 특별한 날이 될 때면 이동순 시인의 '나는 수몰민'이라는 싯귀를 되뇌이면서 애잔한 슬픔과 추억을 되새겨 본다

지리산 삼신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새밭들을 씻어내리는 대밭몰에 사서 (四書)를 강론하던 서당과 소 몰고 연날리던 언덕,가을 풍년수확이

흥에겨워 꽹과리치던 그 곳은 아침이 되니 물안개만 자욱하다

어머니의 탯줄과 같은 고향마을이 수몰되어 전설처럼 내려오던 동네의 역사와 이야기는 단절되고 뿔뿔이 흩어져 버린 이웃은 소식도 없고 강요당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빼앗긴 구수한 산촌마을의 정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영화 '덕혜옹주'에서 옹주는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 앞에서 "동포 여러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우리에게는 돌아 갈 고향이 있습니다."라고

귀향의 간절한 소원을 연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고향'이라는 이름앞에는 만감이 교차되는 법이다.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통일이되면 고향산천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지만 고향이 수장되어 영원히 사라진 우리 수몰민들의 절망감은 본인들 이외는

아무도 상상 할 수 없을 것이다.

고향 마을은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칠성봉 기슭에 위치한 '고래실'이다 '고래실'이라 함은 순수한 우리말로 '인심이 후하고 토지가 비옥하며 살기 좋은 곳'으로 우리말 갈래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이웃 마을은 '참으로 좋은 땅'이라는 이름을 지닌 진번지(眞番地) 이다.

청암면에는 이와 같이 '청학동'을 제외하고 '진번지'와 '고래실'이라는 좋은 지명이 있다. 이런 지명이 같은 행적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길지(吉地)로 명명되고 있는 마을은 흔치가 않을 것이다.

풍수지리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옛부터 불리어져 내려오는 이름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특히 청암은 한국 현대사에서 일제강점기와 6.25 빨치산 전투를 겪어오면서 이념이 서로 다른 상대를 증오하고 배척하는 적대적인 기류 보다는 전쟁후에 후유증을 빠르게 치유하고 화합하는 분위기였다는 사실을 윗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미풍양속도 모두가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해 본다

흔히들 시간의 걸음걸이를 말할때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되어 있다고들 한다. 다행히 회상할 수 있는 정지된 과거가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 큰 은총이다

눈을 감으면 호수의 수면 아래에서 펼쳐진 추석명절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간다.푸짐한 음식으로 나누던 이웃의 정취, 씨름,윷놀이와 콩쿨대회 그리고 객지에서 찾아온 형님들의 멋있고 셜례이는 도시 이야기 등 잃어버린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

그러나 눈을 뜨면 상황은 다르다. 갈대 밭을 혜매이는 야생 고양이가 몇마리 눈에 들어 올 뿐이다.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마을 앞 공터와,멱감고 가재잡던 도랑물은 흔적도 없고 지금 쯤은 들을 수 있는 수확의 기쁨으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명절이면 으례 거론되는 쳐녀총각의 혼담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소문에 의하면 고향마을 주변에 위치한 하동호를 중심으로 새로운 복합 힐링타운이 건설된다는 말이 들린다.

고향집과 옛 마을은 수몰되고 없지만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있는 미래에는 하동알프스의 깃발이 복된 길지(吉地)라고 전해오는 진번지와 고래실 마을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