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 문 찬인

진경준이라는 젊은 검사장이 넥센으로부터 주식을 공짜로 취득하여 126억여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한바탕 난리가 나더니만,
급기야는 우병우라는 민정수석에게 불똥이 뛰었고, 이 불똥은 여론을 크게 악화시켜 박근혜 대통령의 대형화재로 번져버렸다.
우병우라는 분도 넥센과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 의경 아들의 꽃보직 의혹, 처가의 탈세혐의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는데 청와대의 강력한 비호 아래 아직도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세종 14년 (1432년) 6월 25일 세종은 삼정승과 핵심신하들을 소집하여 지금의 감사원장격인 대사헌 신개의 뇌물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의논한다.
대사헌 신개에게 강원도 고성군수 최치가 문어 두 마리를 주었다고 하는데 대사헌 신개는 이를 받지 않았다고 하나 이것은 의심할 만한 일이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강원도 고성군의 미곡(米穀)이 사라진 것이 발견되자 1차 수사기관인 강릉판관은 창고지기가 훔친 것으로 결론을 내었는데 그만 창고지기가 옥중에서 죽고 만다.
전말을 보고받은 형조에서 강원도 감사에게 재조사를 요구하였고, 재조사 결과 고성군수 최치가 고을 아전과 공모하여 미곡을 훔쳤고, 창고지기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형조에서 최치를 국문하였고, 이 때 최치가 대사헌 신개에게 뇌물로 문어 두 마리를 주었다고 자복하였다.
형조는 즉각 신개를 탄핵했다.

세종은 다시 하문한다.
만약 보통 관원이라면 마땅히 문제 삼을 것이 없는 보잘 것 없는 문어 두 마리지만,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이와 같은 일이 있었으니 세상의 여론이 어떠하겠는가?
좌천시킬 것인가? 그냥 둘 일인가?

대사헌 신개의 혐의를 두고 상세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신개 친척의 하인이 고성에서 문어 아닌 생대구 두 마리를 받았고, 이는 신개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밝혀졌다.
무관함이 밝혀졌지만 신개는 사직을 청한다.
"대사헌의 직책은 위로는 조정이 잘되고 못됨을 밝히고, 아래로는 중앙과 지방의 옳고 그름을 다루는 자리인데 신은 용렬한 사람으로 이미 부끄러움이 많사옵니다.
어찌 부끄러운 얼굴로서 백관을 규찰할 수 있으며, 스스로 결점이 있으니 여러 사람을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잘못의 유무에 앞서 의혹에 휩싸이는 것 만으로도 조직과 나라를 위해 그 책임을 묻는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금품수수 의혹을 받은 당시 법무부차관과 옷 로비 사건에 연루된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억울하다고 펄쩍 뛰면서도 사표를 먼저 쓰고 검찰 수사에 응했다. 법무부 차관과 법무비서관 자리에 있으면서 수사를 받으면 또 다른 불공정 시비가 생길 수 있으니 옷부터 먼저 벗은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나중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 건국이후 처음으로 직을 유지한 채 검찰수사를 받는다.
민정수석비서관은 공직자의 인사검증을 담당할 뿐 아니라 검찰, 경찰 등 사정라인을 총괄하는 자리이다.
대통령의 신임도 두텁고, 게다가 현직에 있으니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그 결과는 뻔하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차관급인 일개 수석의 일이 정권의 명운을 거는 일과 결부되어 버렸다.
세종 때 대사헌 신개는 먼 친척의 하인이 대구 두 마리를 받은 것 때문에 스스로 사직을 청하였다.
사정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는 스스로 가장 맑아야 한다. 의혹에 휩쓸리는 것 만으로도 이미 도덕성이 상실된다.
현직을 끝까지 버티는 속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버리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손으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생겼다.

읍참마속(泣斬馬謖)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벤다는 뜻이다.
촉의 제갈량이 위의 사마의와 싸우면서 지시대로 싸우지 않은 마속의 목을 베고 그러면서도 아끼는 장수를 죽이는 것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는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시에 많은 참모와 장수들이 마속의 처단에 반대했지만 유비사망 이후 기울어 가는 촉의 기강 쇄신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제갈량의 결단이었다.
마속의 입장에서는 잘하려고 하다가 실수한 것이니 억울하였겠지만 나라를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는 그의 죽음이 오히려 필요했던 것이다.

청와대의 비호와 우수석의 버티기, 거기에다 우수석이 검증한 이철성 경찰청장의 음주운전과 신분엄폐가 민심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책임과 반성 보다는 어떻게 하든 권력을 붙잡고 지키려 하는 것이 우선인 모양으로 세간에 비쳐지고 있으니 요즘에는 신개 같은 대사헌이 오히려 바보처럼 여겨질까?

염치없는 민정수석과 경찰청장,
그런 부끄러움 아래서 일하는 사정라인,
이들이 어찌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을 규찰할 수 있겠는가?
권력을 쥔 자들이여! 예의염치(禮義廉恥)를 다시금 생각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