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비 문 찬인

‘ 민중은 개, 돼지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대한민국 교육부의 정책기획관이란 사람이 동문모임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국회에 불려가서 취중 실언이라고 변명했지만, 결국은 파면이라는 극약을 마셨다.

18c말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났다.
빵 아니면 자유를 달라던 민중에게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16세의 왕비 마리앙트와네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는 유명한 말로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상황이 아주 다른 이야기 이지만 그 사회의 지배 엘리트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무지하고 삐뚤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이다.
서울의 명문대를 나오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 양반은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수십 번 이 조항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아무리 동문끼리의 술좌석이라지만 그런 망언을 주저 없이 내뱉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나는 개, 돼지다’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글들이 SNS에 넘쳐 났지만 모두들 현상에만 주목하고 발언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잘 짜여져 있고 건전한 상식이 자리 잡고 있는 그런 사회라면 ‘웬 미친놈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부렸구나’하는 정도에서 그칠 일이 대중의 분노가 확산되고 결국은 파면까지 당하고 말았다.
왜 우리는 이토록 분노하고 어처구니없어 했을까?

2000년대 접어들어 점차 심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양극화가 문제의 주범인 것 같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계층 간의 이동마저 어려워져 금수저, 흙수저의 신분 고착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상위 1%가 하위 99%를 움직이는 엘리트 자본주의가 횡행하면서 비롯된 민중의 반감이 여과 없이 폭발한 것은 아닐까?
‘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아주 가난하거나 어려운 가정에서 출세한 사람이 나왔을 때 쓰는 말인데, 요즘은 거의 듣기가 어렵다.
그만큼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어느 사회학자의 조사 연구에 따르면 계층 간의 이동, 즉 신분 상승 가능성은 18%에 불과 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가난한 집은 다음세대에도 가난할 확률이 82%라는 말이다.
이러다보니 계층 간의 반목 불신이 심화되고 교육부 국장쯤 되면 출세한 사람인데 그따위 소리를 하니까 사회적 분노가 그 사람에게 폭발한 것 같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소수의 엘리트가 집단 전체의 성과를 결정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을 제시 하였다.
상위 20%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80%를 차지한다거나, 상위 20%의 히트 상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 한다는 의미로 경제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살수대첩으로 수나라 100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백성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13척의 배로 적선 133척을 물리친 명량의 이순신 장군
역사는 항상 상위 1%의 이야기만 기록하고, 그 상위 1%가 공적을 세울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어준 99%의 민중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과연 민초들은 영화 ‘명량’에서처럼 산언덕에서 절이나 하고 있었을까?

삼성 이건희 회장처럼 소수의 엘리트가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파레토의 법칙에 대한 맹신과 왜곡은 엘리트 지상주의로 이어져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교육부의 그 간부나 혹시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어. 너희는 따라 오기만 해. 그러면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이런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매우 우려스럽다.

몇 개의 히트상품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던 파레토의 법칙이 무너지고 틈새 상품들의 위력이 거세지고 있다.
IT의 발달로 소비자들이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상품에 손쉽게 접근하면서 히트 상품 소수 20%의 매출보다 별 볼일 없는 다수 80%의 매출 합계가 더 크다는 롱테일의 법칙, 즉 하찮은 다수가 전체를 주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의 막말 트럼프의 돌풍, 비주류를 대변한 샌더스의 선전, 영국의 브렉시트 등은 세상을 지배하는 소수 엘리트에 대한 다수의 반감이 밑바탕에 있다는 분석이다.
2017년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도 격차의 끝에 서있는 다수의 마음을 잡는데 달려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개, 돼지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민중은 개, 돼지 이니까 먹고 살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맞는 말이다.
그 사람 말처럼 먹는 문제 앞에서 개, 돼지가 되어 본 적은 없었을까?
직장과 승진이라는 절대적 필요 앞에 나의 주관 철학, 옳고 그름, 평소의 신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 나는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되는 민중에 불과했고, 개, 돼지 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었다.
나에게는 교육부 그 사람의 망언을 규탄할 도덕적 정당성이 전혀 없다.
당신들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