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는 차잎을 익히는 방식에 따라 덖음차와 찐차로 나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차의 동향(動向)을 보면, 섬진강권은 소규모 솥덖음녹차를 주로 만들고 서남권은 대규모 자동화 기계식 찐차를 주로 만든다. 그러나 실상을 잘 살펴보면 서남권에서도 솥덖음녹차를 만드는 이들이 적지 않고 섬진강권에서도 기계식찐차를 만들며, 덖음녹차의 조다(造茶)에는 원통형 기계솥과 비빔기계의 적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우리차는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70년대부터 부활하기 시작하였는데, 전통이 결코 미천하지 않은 우리차 산업과 문화의 규모와 수준은 아직도 치졸(稚拙)하다.
과거 동아시아인들의 전유물(專有物)이었던 차는, 오늘날 전(全)지구인들이 향유하고, 생산지역도 인도권과 케냐, 터키, 아르헨티나 등지로 확산되었다. 우지교쿠로, 시후롱징, 치홍, 다즐링 등은 일본과 중국, 인도의 한 지역에서 생산되어 그 나라를 대표하고 세계인들이 애호한다. 이런 명차(名茶)들은 특정(特定)된 품종, 재배, 채엽, 제조 등에 대한 경험과 노력이 집적(集積)된 결과이다.
1970년대까지 남아있던 우리차의 흔적은 희박하였고 일본색(日本色)마저 섞여 있었다. 198,90년대에는 차밭 면적과 찻닢 생산량이 급속히 늘어나고, 차 제조는 일본색의 대규모 자동화 기계식 찐차 방식과 재래식과 개량식의 소규모 솥덖음차 방식들이 섞여서 진행되었다. 1990년대부터는 중국풍(中國風)도 들어와서, 가지가지 방식들이 뒤섞이게 되었다.
현재 우리차는 지리적 표시제에 따라 하동차, 보성차 등으로 나뉘지만 같은 지역의 차라해도 제조방식이 각양각색이라서 완성차의 향미는 제멋대로이다. 이는 차 선진국의 형식만을 추종한 결과이다. 좋은 차를 만드려면, 지역의 사회적 자연적 환경에 걸맞는 품종육성, 재배법, 제다법 등이 확립(確立)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역 차농가와 제다업체들의 자발적 합의와 실천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고 법과 제도의 효율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차가 내재적인 축적과 실질적인 발전 없이 외국의 외형만 쫓는다면, 후진(後進)을 벗어날 수 없다.
“좋은 우리차인 고려차를 만들어 고려인삼과 쌍벽을 이루어 세계로”라는 선친의 유지를 쫓아, 고향인 화개 땅에서 자라는 차나무를 제대로 기르고 따서 만들어 담는 것이 내 필생의 과업이다. 그동안의 교유와 경험을 담은 이 글에서는 우리 덖음녹차의 제조법들의 방식과 기법들을 공정의 차례에 따라 풀어 보려 한다. 옛것, 새것, 누구 것, 내 것 등을 밝히지 않음은, 취사선택의 자유을 보장하고, 쓸 데 없는 시비가 싫어서이다.

1. 차잎 덖음 솥인 부(釜)와 과(鍋)에 따른 ‘덖어 익히기’의 기법
차잎을 덖는 솥에는 부(釜; 가마솥)와 과(鍋; 노구솥)가 있다. 가마솥은 바닥이 얕으며 원통이 이어져 있고, 노구솥은 반구형(半球形)으로 바닥이 깊고 둥글다.
가마솥은 물을 끓여 삶고 데치거나 시루를 올려 찌는 데 걸맞은 솥이다. 크고 무거워서 설치하기가 버겁고, 두꺼운 쇠솥이라 열도 조절도 어렵다. 부뚜막에 앉아서 손으로 차잎을 덖을라치면, 손가락 끝과 팔뚝을 데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솔이나 주걱 같은 것으로 덖기도 하고, 물을 한 사발 넣고 뚜껑을 덮어 익히거나, 물을 끓여 데쳐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가마솥 덖음차는 1980년대 이전에 절(불교사원(佛敎寺院))을 중심으로 나름의 영향력을 가졌으나 이후 대부분 노구솥으로 대체되었다. 아직도 전통과 다맥을 들먹이며 위의 아류(亞流) 가마솥 덖음차를 내세우는 이들이 있다. 불교는 차와의 역사적 연계가 깊다. 우리 불교가 암흑기 우리차의 불씨를 지키고, 우리차의 부활을 이끈 공덕은 칭찬받을 일이나 우리차 발전의 걸림돌이 되려한다면 말리고 싶다.
당나라 때 육우<다경>을 보면 부(釜)로 찐차를 만들었고, 명나라 때 장원<다록>을 보면 과(鍋)로 덖음차를 만들었다. 오늘날의 우리 손덖음녹차 만들기에는 철제(鐵製) 노구솥이 주로 쓰인다. 재질로 보면 알루미늄, 구리 등은 한 때 사용되었고,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도기도 일부 사용되며, 연료는 가스를 주로 사용한다. 철제 전기솥도 일부 쓰이는데, 산화철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전기솥도 있다.

2. ‘덖어 익히기’의 기법과 솥의 열도(熱度)를 비롯한 요소(要素)들
차의 신선엽은 덖어 익히기를 통하여 산화효소가 실활(失活)되면서 부드러워지고 수분이 준다. 그래서 녹차 특유의 신선상쾌한 향미를 갖게 되고, 비비기와 말리기로 이어진다.
녹차의 덖어 익히기에 있어서는 차잎을 모두 고르게 안팎을 잘 익혀야 한다. 타거나 넘치게 익거나 설익거나 겉만 익고 속이 설익으면, 비비고 말릴 때 부서지고 찢어지고 뜨게 되어, 탄냄새, 풋냄새, 잡냄새, 뜬냄새 등이 섞인 차가 된다.
덖음 녹차의 제조에 있어서, 차잎의 두께는 솥바닥으로부터 20cm 아래위로 하여, 200도씨 앞뒤로, 5~6분 동안 덖어 내는 것을 덖어 익히기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 기법의 성취(成就)를 높이려면 차잎의 성질에 따라 투입량, 솥의 열도, 덖는 시간 등의 요소들을 잘 조정하여야 한다. 여린 차잎은 함수율이 적고 부드러우므로 열도를 낮추어 짧게 덖어 익히고, 쇤 차잎은 크고 단단하고 함수율이 높으니 열도를 높이고 투입량을 늘려 자주 뒤집어 준다. 시들리기가 충분히 된 차잎은 열도를 낮추어 덖는다.
“차는 성질이 차니 뜨겁게 익혀야 한다”며 300도씨 이상에서 차잎을 덖어 익히는 이들이 있다. 차의 냉성론(冷性論)은 주성분인 카데킨의 수렴성(收斂性) 때문인데, 그 때문에 입안이 개운해지고 피가 맑아진다. 카데킨의 고삽미와 수렴성은 발효와 가열을 통하여 순화(順化)된다. 차잎은 빈대떡 부치듯이 솥 바닥에 비벼 익히지 않고, 솥바닥 위의 공간에서 복사열을 쬐어 익혀낸다. 그러므로 솥 안의 차잎이 데워지면 뒤집고 흔들어서 수분을 날려가며 불기운을 충분히 쬐어 주어야 한다. 너무 뜨거운 솥에서 덖어 익히기를 하면 자체 수분에 의해 빠르게 쪄지듯이 익어 찐차의 성질이 섞인 덖음차가 된다.
‘아홉 번 덖은 차’라고 목청을 돋우며, 솥을 들락거린 녹차(?)를 만드는 이들도 있다. 차잎의 산화효소도 40도씨 아래위에서 활성화된다. 때문에 솥을 아홉 번 드나든 찻닢은 40도씨를 십팔 번 통과하며 만들어진 셈이다. 그렇게 만든 찻닢은 뜨겁게 우려내어도 달고 부드러운 향미를 내는 황차이다. 녹차의 신선상쾌한 향미를 지녔다면 거짓이다.

3. ‘비비기’의 기법
익힌 차잎은 비비기를 한다. 비비기를 하면 찻닢이 모양을 갖추게 되어 단단해지고 부피가 줄어 보관과 운송이 편해진다. 또한 찻닢의 조직이 유연(柔軟)해져서 찻물이 잘 우러나게 된다.
차잎의 비비기는 덩이를 지어 공 굴리듯이 한다. 차잎끼리 서로 부대끼면서 모양이 갖추어지고 멍이 드는 셈이다.
너무 세게 비비면 차잎이 깨어진다. 만들어진 찻닢을 우려내면 부서지고 갈라져 있으며 찻물색이 혼탁하면서 어둡고 향미가 무겁다.
약하게 비비면, 찻닢의 연화(軟化)가 고르지 않고 엽맥이나 잎줄기가 뜨게 되어, 찻물색과 향미가 옅고 어지러우며 저장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비비기는 약강을 교대로 진행하고 비비기와 풀기를 반복하여, 으깨짐을 피하여 안팎이 고르게 비벼지도록 진행한다.

4. ‘덖어 말리기’의 곤란(困難)
輕團那數遍復下鍋中, 漸漸減火焙乾爲度(가볍게 덩이 지어 여러 번 비빈 (차잎을) 솥에 다시 넣고, 조금씩 열도를 낮추어 덖어 말린다)
다성(茶聖) 초의선사의 <다신전>에 실려있는 ‘비비기’와 ‘덖어 말리기’에 대한 구절이다. 과문한 탓인지, 초의 다맥을 이었다는 많은 이들 가운데 위의 ‘덖어 말리기’를 실행하는 이를 듣고 보지 못하였다.
물론 초의의 <다신전>은 명나라 사람인 백연의 <다록>을 베낀 것이고, 그 조다법은 덖어 익히고 꺼내서 비빈 다음 다시 솥에 넣고 덖어 말려 끝내는 방식이다. 이 조다법의 배건(焙乾; 말리기)기법은 어려워 숙달하기 힘들고 생산성도 낮아 모두가 외면하나 보다.
잘 익히고 제대로 비빈 차잎은 정밀한 덖어 말리기를 통하여, 풋내가 지워지고 복합형 카데킨이 분해되며 당류와 아미노산 늘어나게 되어, 산뜻하면서 부드러운 감칠맛과 은은하고 깊은 여운을 가진 덖음녹차가 된다.

5. 넘치는 ‘마무리 덖기’를 하지 말자.
말리기를 끝낸 마른 찻닢은 가리기를 거처 후숙(後熟)한 뒤에 저장한다. 상품으로 소포장하기 직전에 마무리 덖기를 하여, 잔여 수분을 줄이고 저장 시에 생겼을 지도 모를 잡향미를 없앤다.
마무리 덖기는, 특이한 잡향미가 없는 찻닢이라면, 100도씨 아래위에서 10분 앞뒤로 진행한다.
마무리 덖기가 넘치면, 산뜻한 꽃내음을 내는 방향(芳香) 성분은 거의 날아가고, 부드러운 감칠맛과 깔끔한 뒷맛 대신에 다당류와 단백질에서 나오는 누룽지 향미를 덮어쓴 찻닢이 된다.

6. ‘널어 말리기’와 ‘마무리 덖기’ 위주의 덖음녹차의 제조방식
‘덖어 익히고 비벼서 널어 말리기’가 현재 통용되는 우리 덖음녹차의 주된 제조법이다. ‘널어 말리기’는 제조자의 사정에 따라 밀실, 열풍건조기, 열판건조기, 냉풍 또는 자연풍 건조대 등에서 이루어진다. 널어서 말린 찻닢은 생김새가 거칠며 향미가 어지럽고 무겁다. 때문에, 마무리 덖기를 길게 하여 그 열악(劣惡)을 감춘다.

7. 맺음말
건강한 산업의 토대 위에 우아한 문화가 피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넉넉하고 아름다워집니다.
우리 차산업을 제대로 세우려면, 인력의 부족, 재배와 생산 기술의 낙후, 유통의 혼란, 외국산 차들의 범람 등, 겹겹이 둘러싼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차농가와 생산자 조직을 건실하게 만들고, 차나무의 재배와 차 제조에 대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학술연구와 산학 간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며, 행정과 금융의 실효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사진설명 : 고려다원 요산당 하 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