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화
; 커피문화에는 교훈과 교육, 기능, 역사, 문화, 예술을 담아내야 한다!
지나간 몇 번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잠시 세계의 커피역사를 접어두고 한국의 커피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제 커피에 관해 조금쯤 이해하시겠습니까?
커피는 이미 알게 되신 것처럼 역동적인 세계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함께 이루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우리나라에 커피가 어떤 경로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보았습니다. 서민들이 부르던 양탕국이라는 커피에 대해서, 우리나라 초기의 커피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사실 이 ‘양탕국’이라는 말은 그 시대에 유행하다가 사라졌습니다. 마치 대한제국이 일본의 강제적인 한일병합조약으로 인한 경술국치로 사라졌었던 것처럼 대한제국과 함께 사라진 ‘양탕국’이라는 한국적 커피문화의 시조는 그처럼 한국근대사에 잠깐 등장하고 사라져버린 고어(古語)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다시 한 번 살펴보자면 커피는 1880년대 인천항개항을 전후로 서양의 물품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함께 전해졌는데요, 당시 커피는 가배, 가비, 카피차, 코오피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며 귀족들과 신흥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조선으로 선교활동을 온 미국과 영국의 선교사들도 커피를 가지고 들어와 일반에 알리고 인천항으로 무역을 하러 들어온 상인들도 커피를 마케팅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저자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양탕국’이라는 이름으로 이 서양의 시커먼 한약같은 국물을 호기심으로, 혹은 약으로 마셨는데요, 당시에 우리나라의 서민그릇은 막사발이 전부였기에 손잡이가 달린 커피잔이 아닌 막사발이나 대접에 부어서 그득히 마셨다고 하니 커피를 사발에 담아 마시는 그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료로는 별로 언급된 것이 없는 커피이지만 한국을 다녀간 선교사들이나 학자들의 기행문이나 자서전에 의해 커피가 상류층에서는 상류층대로, 서민층에서는 또 서민층대로 애음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커피애호가로 알려진 고종황제였고, 우리나라 근대 커피역사의 정점은 김홍륙의 고종독살음모로 인해 클라이막스를 찍습니다. 어쨌거나 이후로도 고종황제는 커피를 마셨고 당시 러시아 공사 베베르(Weaber K. Ivanovich)의 처형(妻兄)이었던 독일인 앙뚜아넷 손탁(孫凙:Antoinette Sontag)은 고종황제의 바리스타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종황제는 손탁여사에게 서울시 중구 정동에 땅을 하사했으며 그녀는 이 곳에 ‘손탁호텔’을 짓고 ‘정동구락부’라는 카페를 열어 커피를 판매하였지요. 손탁호텔은 최근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판매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천의 대불호텔터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1900년 초에 세워진 손탁호텔에서도 커피를 팔았지만 188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 세워져 주로 서양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인천의 대불호텔에서는 서양식 음식을 만족스럽게 서비스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는데요, 당시 문헌에는 대불호텔에서 ‘양탕국’이라는 메뉴로 커피를 판매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1920년대가 되면서 종로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이나 문인들에 의해 ‘다방(茶房)’이라는 이름으로 차와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이곳은 일명 모던보이/모던 걸(-서양문물을 적극 수용하고 자신의 실생활에 접목시키는 구한 말 젊은 신지식인층)들의 모임장소가 되었습니다. 다방에서 이들은 역사와 문화를 논하고 철학과 인생을 이야기하였으며 예술을 창작하였습니다. 더불어 신문은 집에서 커피를 맛있게 만드는 법을 기사로 싣기도 했으니 커피와 다방은 1930년대 40년대를 거쳐 명동 등지로 퍼져나가면서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선(한국)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이름과 이야깃거리로 대중에게 사랑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 이야기에서 잠깐 언급하고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만, 혹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커피를 마시는 다른 나라들은 ‘커피’하면 원두커피를 뜻합니다. 그리고 인스턴트커피는 말 그대로 ‘인스턴트커피’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한국은, ‘커피’하면 떠올리는 말이 몇 년 전까지, 아니 아직까지도 ‘인스턴트’커피를 뜻하는 말입니다. 갈아서 마시는 원두커피는 당연히 ‘원두’커피라고 부르지요. 우리나라에 커피문화가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커피‘문화’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바로 인스턴트커피‘문화(?)’가 생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나라지요. 커피를 마시는 나라 중 세계 어느 나라도 인스턴트커피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커피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지난 편에서 인스턴트커피가 그 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들어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어쨌든 인스턴트커피는 한국전쟁과 함께 ‘원두’커피를 잡아먹어버렸고 그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한국산 인스턴트커피의 생산과 발맞추어 점점 더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하게 됩니다. 그리고 1970년대 말, ‘커피자동판매기(=일명 자판기)’의 등장은 불꽃이 일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인스턴트커피 소비에 거대한 불을 당기게 됩니다. 자판기 시장은 70년대 이후 8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전국의 대학과 식당, 거리 곳곳을 점유하며 1999년 이화여대 앞 스타벅스 1호가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의 인스턴트커피 소비량 99퍼센트라는 신화를 이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스타벅스는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새로운 개념의 커피문화를 선도하였습니다. 인스턴트일색이던 한국의 커피문화에 ‘에스프레소’‘원두’‘테이크아웃’이라는 새로운 커피를 들여왔고 밝고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창출하였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단지 ‘커피’가 아니라 ‘스타벅스’라는 선진문화를 공유하는 정신적인 우월감을 심어주면서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커피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나라 정서상 한 끼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시는 여대생-직장인들을 가리켜 외국문화를 맹목적으로 좇는 허영심 가득한 정체성을 잃은 한국 여성의 뜻으로 ‘된장녀’라는 말로 비아냥거리기까지 한 에피소드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커피제국의 프로그램을 모방한 국내 대기업의 “커피점 프렌차이즈의 우후죽순적인 팽창”은 커피문화에서 한 세대의 흐름을 교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커피점 프렌차이즈 춘추전국시대는 결코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오지는 않았습니다. 된장녀 에피소드는 사라져버리고 진정한 의미의 커피로 한발자국 더 다가갔으며 선진문화공유라는 스타벅스적인 정신적 충족에서 더 나아가 우리만의 커피문화를 이루어보려는 문화적인 갈망이 움트게 된 것입니다. 그 갈망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사라진 대한제국, 그리고 함께 사라졌던 우리 커피문화의 시조(始祖) 양탕국입니다.
이제 양탕국은 그 모토가 ‘카페 양탕국, 대한제국을 담다’인 것처럼, 일제강점기와 급속적인 산업화를 지나며 사라져버린 우리의 문화, 우리의 멋을 대한제국과 함께 다시금 재현하여 더 발전시키는 큰 그릇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