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화 세계 커피계의 이단아, – 한국 인스턴트커피(6/25)

이단아(異端兒),
참 재미있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단아(異端兒) : [명사]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혁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

이제껏 세계의 역사 속에 켜켜이 녹아있는 커피의 역사를 보셨는데요, 그렇다면 ‘한국의 커피는 무엇일까?’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우리나라의 것으로 딱 떠오르는 커피가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커피나 한 잔 마시자’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커피한 잔의 커피로 어떤 ‘커피’를 떠올리시나요?
아마도 여러분은 무의식적인 뇌리 속에서 동서식품의 ‘맥심’커피를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커피를 다루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스턴트’커피입니다. 그래서 커피역사의 마지막인 우리나라 현대커피의 역사로 넘어가기 전에 오늘은 인스턴트커피의 탄생과 그 역사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제껏 커피의 역사에서 주욱 살펴보셨던 바와 같이, 사람들은 6~7세기경, 아니 그 이전부터 커피를 음용해왔습니다. 커피가 식물이었기에 식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사용되어졌지요. 식량으로, 술로, 더 나아가서는 약으로, 그리고 음료로 정착화되었지요.
그러면 커피를 휴대하면서 먹기(마시기) 위하여 사람들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였을까요?
초기 아프리카인들은 커피체리를 동물성기름에 볶아서 말린 후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한 시기가 되면 풀이나 곡류 등과 함께 갈거나 끓여서 식량으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 후 커피씨앗을 볶은 후 갈아서 끓이거나 내려서 마시기가 정착되기까지 커피는 많은 방법으로 음용되었습니다.
인류가 커피를 마시게 된 이후, 인류의 역사는 참으로 다이나믹하게 흘러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더불어 커피를 먹는(마시는) 방법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게 되었는데요, 그 중에 가장 획기적인 방법으로 ‘인스턴트커피’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즘 흔히 마시는 가루나 과립, 입자로 된 인스턴트커피는 어떻게 개발되고 만들어졌을까요?
물론 인스턴트커피가 개발되기 이전에도 ‘휴대용’커피가 있었습니다. 생활전반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인류는 볶고 갈고 내려서 한가로이 마시는 커피 외에도 가지고 다니면서도 마시는 커피를 갈망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1900년경에 영국에서는 커피를 내려서 설탕을 넣은 후 농축하여 마시는 액상원두커피를 개발하여 음용하였고 더 나아가 1901년 미국에서는 일본계 미국인 가토 사토리라는 과학자가 ‘물에 녹는 커피, Soluble Coffee’라는 개념을 발표하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분쇄한 원두에 증기나 열탕을 통과시켜 커피액을 추출한 후에 원심분리기에 넣어 입자를 제거, 뜨거운 바람으로 건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건조과정에서 받는 뜨거운 열로 인해 커피맛과 향이 사라지므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단계 산업화된 커피의 형태를 제시한 것으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에 녹는’ 그 매력적인 부분은 소비국가인 미국의 산업화와 발맞추어 커피를 개발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로 초기 인스턴트커피를 대량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제 1차 대전에 커피를 공급함으로써 커피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패턴을 갖추게 됩니다.
한편으로 1938년, 브라질의 커피풍작으로 인한 커피과잉공급이 커피의 가격을 떨어뜨리게 되자 브라질 정부는 스위스의 네슬레사에 커피재고를 처리하는 방안을 의뢰, 네슬레사는 기존의 ‘물에 녹는’커피의 단점을 보완하고 더 응용하고 연구하여 현재의 ‘가루’인스턴트커피, 즉 전문용어로 ‘spray dried coffee;분무건조커피;SD커피’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스턴트커피는 세계적 산업화, 대량생산 대량소비, 전쟁과 함께 점점 발달해나가게 됩니다. SD커피의 그 편리성과 맛은 이전의 액상농축커피나 솔루블 커피보다는 훨씬 뛰어났지만 생산체계가 안정화되면서 더 높은 품질과 맛과 향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960년, 네슬레사는 SD커피의 단점을 보완하여 더 부드러운 맛과 향을 살린 새로운 인스턴트커피, ‘high vacuum freeze dried coffee;진공동결건조커피;FD커피’를 개발해내게 되었고, 이것은 지금까지 고급 인스턴트 커피에서 쓰이고 있는 방식입니다.
여러분도 집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드실 때에 커피입자를 잘 살펴보면 그냥 가루로 된 것이 있고, 납작납작한 입자모양의 커피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자가 분무건조커피이고 후자가 진공동결건조커피입니다. 물론 맛과 향이 무엇이 더 뛰어난지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외에도 브라질에서 자주 사용되는 ‘과립커피(Granule Coffee)’도 있습니다. 일명 그래뉼커피라고도 불리는 이 커피는 분무건조커피를 더 잘게 부순 후 다시 냉각건조하는 방식의 커피로, 찬물에도 잘 녹아 아이스커피로 많이 마십니다. 잘 살펴보시면 말 그대로 커피자체가 몽글몽글한 과립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다이나믹한 역사를 가진 인스턴트커피가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나라만의 커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까요?　
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처럼 ‘원두’커피를 마시지 않고 ‘인스턴트’커피를 마셨으며, 인스턴트커피가 우리의 생활에 뿌리내리게 된 것일까요? 한창 ‘원두’커피문화가 꽃피던 대한제국시대 그 시절과 일반에서 친근하게 다가갔던 ‘양탕국’은 왜 사라졌고 그 자리를 ‘커피’, 그것도 ‘인스턴트커피’가 ‘커피’로 자리매김하며 대신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씨레이션(C-Ration)으로 들어온 인스턴트커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전 여유롭게 원두를 내려서 마시던 문화가 전쟁과 함께 피폐해진 생활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들은 커피를 휴대하고 마시면서 전쟁을 하였다지만 ‘1950년 한국전쟁’은 하루 한 끼도 먹을 수 없었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겨우겨우 몸만 챙기면서 다녀야 했던 피난의 참상 속에서 커피를 여유롭게 갈아 마셨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지요.. 영화 국제시장을 보신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전쟁은 가족을 잃게 하고 생활터전을 없애고 전 국토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피폐해진 상황에서 한가로이 커피 한 잔을 마신다는 것은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곧 ‘커피’의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군들의 전쟁물자인 ‘인스턴트커피’는 곧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마실 거리가 되었습니다. 제 1‧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의 피폐함으로 인해 종종 아군을 적으로 오인 사격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나폴레옹의 군대가 전쟁에 커피를 지참하고 나선 지 200년 만에, 또다시 군인들의 전투식량으로 지급된 커피가 바로 인스턴트커피였습니다.
이처럼 1950년대 한국전쟁당시 미군들에 의해 들여온, 미군들의 전투식량이었던 인스턴트커피는 이후 약 반세기동안 한국사회를 점령하는 커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커피를 갈고 물을 부어 추출하는 복잡한 절차대신 간편하게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언제든지 먹고 마실 수 있는 미군 비상식량에 있던 인스턴트커피는 휴전이 된 이후에도 간편하게 마시는 미국식 ‘커피’로서 우리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1960년대 말 미주산업과 동서식품의 인스턴트커피공장 설립과 함께 “빨리빨리”로 풍자되는 우리나라의 급속한 산업화와 발맞추어 발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세계 커피역사 상 유례가 없는 인스턴트커피의 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커피역사의 끝시간, 우리나라의 현대커피문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