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화 한국커피문화의 태동-대한제국의 커피이야기 II
: 커피의 명명 –
가배차(咖啡茶)와 가비차(茄菲茶), 그리고 양탕국(洋湯국)의 탄생 (6/5)

여러분은 ‘커피’라는 이름이 세계에서 어떻게 통용되는지 아십니까?
커피는, 지난 2부 7화 커피여행에서 보셨던 것처럼 약 7세기 즈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어 약 반세기 정도 야생상태로 재배되다가 예멘으로 이식되어졌습니다. ‘커피’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에티오피아에서 커피가 발견된 고장의 이름인 ‘카파(Kaffa-힘)’에서 유래되었다는 것과 두 번째는 커피가 본격적으로 이슬람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아랍지역에서 술을 뜻하는 ‘카와(Qahuwa- Kahway, Qahwa, Kahve, 식물에서 나는 술)’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초기의 커피 음용법에서, 커피를 술로 발효시켜 먹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어느 설이라도 ‘커피’라는 발음에는 가까우므로 두 설 모두 정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카파든 카와든, 이 두 단어가 뜻하는 마실거리는 여러 에피소드를 거쳐 1650년 영국의 문학카페 ‘로타클럽’이라는 곳에서 ‘헨리 블런트’라는 사람에 의해 [커피;Coffee]로 명명되었습니다. 그 이후 이 음료는 전파되는 곳마다 ‘커피’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북유럽은 ‘Koffie, Koffe, Cafe’로, 중부이남 유럽은 ‘Caffee’로, 영어권에서는 ‘Coffee’에 이르기 까지 그 이름이 [커피:Coffee]라는 원음에서 크게 이탈됨이 없이 명명되어 왔습니다.
이 외에도 커피는 에티오피아 현지에서는 분(Bunn), 부나(Buna), 분나(Bunna) 등이라 불리우고, 이 말이 동유럽(독일)으로 건너가 ‘본(Bohne, 콩)’으로 불리다가 영국에서 ‘빈(Bean,콩)’으로 불리게 됩니다. 지금도 커피씨앗을 ‘콩’을 뜻하는 豆(콩:두)라고 표현합니다. 커피빈(Coffee Bean)을 원두(原豆)라고 합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원두(元豆)라는 표현을 씁니다.-
커피인들 사이에서는 ‘콩’의 상태가 어떠하냐, 생콩(생두, 커피씨앗), 구운콩(원두, 구운 원두) 이렇게 표현합니다. 커피의 이름이 이렇듯 재미있고 다양하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러면 커피가 처음 전래된 조선에서는 커피를 어떻게 불렀을까요?
커피는 1885년 인천항 개항을 전후해서 들어오면서, 처음에는 ‘가배차:咖啡茶’(중국파), ‘가비차:茄菲茶’(일본파)라고 불리웠습니다. 유길준은 그의 저서 서유견문에서, 중국이 받아들인 서양문물에 대해 소개하면서 커피를 일본식 음차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유길준은 일본에서 유학하였기 때문에 일본식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중국 유학파인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 일본식과 중국식 표현으로 섞어서 커피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泰西人의 食物이 麵包乳油魚肉으로 主張하고, 茶及茄菲는 我邦의 熱冷水같이 飮한다.’
‘서양 사람들의 음식물은 빵, 버터, 생선, 고기류가 주식이고, 차와 커피(가비,茄菲)는 우리나라에서 숭늉을 마시는 것처럼 마신다.’
서유견문(西遊見聞), 유길준, 1883~1884

‘往購茄菲糖乳 乳餠等物而歸’
‘커피(가비,茄菲)당유, 우유과자(빵)등을 사가지고 오다.’

‘歸路, 往咖琲茶館, 溫飮兩盃而歸院’
‘돌아오는 길에 커피(가배,咖琲)차관에 가서 커피 두 잔을 마시고 (중서)서원(당시 상하이에서 윤치호가 공부를 하던 곳)으로 돌아왔다.’
윤치호 일기 1권, 윤치호, 1885~1886

물론 보시는 바와 같이 한국도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름이 없이 ‘커피’라는 말을 그대로 차용해서 한자어에 접목시켜 사용하였습니다. 한글을 경시하던 양반들이나 일본 유학파들은 각각 중국식(가배:咖啡)과 일본식(가비:茄菲) 표현을 한자어로 차용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커피를 표현하기 위한 발음기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중국과 일본은 이렇게 발음기호를 차용한 한자를 ‘커피’의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국 咖啡:카페이 / 일본 コーヒー;고히)
드물게는 ‘카피차’, 혹은 ‘코오-피’라는 표현도 썼습니다. 이것이 그나마 중국이나 일본경향의 사대주의에 물들지 않은 표현이었습니다만, 그다지 자주 사용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양반들이나 신지식인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은 커피를 무엇이라고 불렀을까요? 가배차, 가비차, 카피차 등의 표현을 썼을까요? 어떤 일에나 여유롭고 풍자와 해학이 넘쳤던 우리 민초들은 이 서양에서 들어온 검고 쓴 국물을 무엇이라 불렀을까요?
그것은 인천항 개항을 전후로 쏟아져 들어온 서양문물에 이름을 붙인 우리 조상들의 독창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들어 온 ‘파’라고 해서 양파, 서양배추라고 해서 양배추, 서양식 건물을 양옥으로, 서양식 의복을 양복으로 부르며 서양에서 건너 온 거의 모든 것들을 우리 것과 대별하여 붙인 ‘양;洋’이라는 접두어를 힌트로 보자면 커피를 무엇이라 표현했을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서‘양’에서 들어온 한약‘탕’과 같인 생긴 ‘국’물, 즉 ‘양탕국, 洋湯국’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재미있고 여유롭고 독창적인 발상입니까! 양파, 양초, 양배추 양복, 양말 등 찾아보면 아직도 우리도 모르게 서양 것을 우리 것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참 많습니다.
양탕국!
세계 어느 나라에서 커피를 이렇게 표현하였을까요! 참으로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우리 민족의 거침없는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인들이나 중국분들, 일본분들에게는 조금 죄송한 표현이지만 단일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은 서양인을 일러 ‘양놈’이라고 표현했고, 중국인을 ‘떼놈(되놈)’, 일본인들을 ‘왜놈’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이 ‘놈’이라는 표현은 욕이 아니라 ‘놈, 사람:자(者)’라는, 사람을 뜻하여 부르는 단순한 호칭일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양인, 왜인, 되(북)인(만주인)을 뜻하는 말일 뿐입니다. 그 호칭에 감정을 실어서 표현하니 자연스럽게 욕처럼, 비하어처럼 들리는 것이지요. 실제로 요즘에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고 있지요. 이야기가 살짝 비켜갔는데, 양탕국은 이렇듯 우리 선조들의 해학적이고 거침없었던 커피명명으로, ‘양(놈)’들이 마시는 ‘탕국’, 혹은 ‘서양에서 들어온 탕국’이라는 독창적인 표현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참으로 이 ‘양탕국’이라는 말에는 역동적인 구한말의, 그 시대의 우리 선조들의 거침없고 능동적인 정신이 묻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배차와 가비차가 양반들과 귀족들, 왕족들에 의해 명명되어진, 덕수궁에 고향을 두고 있는 이름이라면 양탕국은 당시 백성의 모습 중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풍부한 우리 문화를 보여주는 우리의 장터마당에서 무형식으로 만들어진, 저자거리가 고향인 독창적인 커피의 이름인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하동읍내장터에서 매실축제가 열렸습니다. 매실을 중심으로 한 하동의 명물들을 만나보았는데요,, 우리도 그 중 하나로 섞여 들어가 장터마당에서 맛있는 양탕국을 사람들에게 대접하였습니다. 즉석에서 갈아 내린 커피가 이렇게 고소하고 맛있는지 몰랐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렵고 힘든 커피가 아니라 쉽고 자연스러운 커피, 즉 양탕국이라는 이름처럼 자연스럽고 독창적인 커피문화로 바뀌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번 커피역사 칼럼의 마지막, 우리나라의 현대 커피문화를 살펴보고 커피의 역사편을 접을까 합니다. 맛있는 커피 한 잔 하고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