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화 커피와 차문화의 나라 터키(3/5)
 

터키는 또 차문화의 나라입니다.
커피의 나라가 아니라 차의 나라라니,,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터키는 이슬람의 배경 아래서 전통적으로 커피문화를 발달시켜왔습니다. 커피의 생산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점령국이었던 예멘에서 들여와 소비를 했지요. 하지만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면서 예멘은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고, 커피가격이 비싸지면서 터키의 커피수입은 중단되고 맙니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커피를 마셨던 터키인들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터키공화국이 수립된 후 터키정부는 국민들의 커피소비를 대체할 음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여러 분야의 조사를 거쳐서 북동부 흑해지역이 차를 재배하기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차를 직접 생산하기로 하고 1920~30년대에 중국산 차모종 시범재배를 시작하면서 터키의 차문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생산된 차들은 ‘차이’라는 이름으로, 발효시킨 홍차였습니다. 비록 뒤늦게 차문화를 접하게 된 터키인들이지만 지금은 하루에도 서너 차례나 티타임을 가질 정도로 차를 많이 마십니다. 그리고 터키만의 커피문화가 있었듯이 터키만의 차문화를 잘 발전시켜왔습니다. 동네마다 지역마다 차를 마시는 카페가 있고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차를 나누어 마시며 커피문화에서도 그랬듯 차문화도 조화롭게 발달시키고 있습니다.
터키의 차음용법도 커피음용법에 영향을 받아서, 영국 등 유럽처럼 연하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졸이듯 진하게 끓여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마신다고 합니다. 마치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어 아메리카노를 마시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터키’하면 차보다는 커피를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요? 터키에서 차를 생산한다는 사실은 터키에 직접 가보거나 터키에 관해 공부하거나 터키사람을 만나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정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차소비에 있습니다. 터키의 차는 자국에서 생산되어 자국에서 소비됩니다. 따라서 수출을 한다거나 국외에서는 터키차를 찾아볼 수 없지요. 한 예로 터키의 차소비는 연간 1인당 약 2kg를 넘으면서, 홍차의 나라라고 불리는 영국의 1인당 차소비량에 거의 육박하고 있으니 정말 많이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생산되는 차를 자국에서 모두 소비해버리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차조차도 자신들의 문화로 일상에서 잘 받아들인 터키인들의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커피를 통한 ‘자유함’에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타인과 소통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함께 대화를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영적인 교감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소통이지요. 커피는 그러한 음료입니다. 단순히 육신을 즐기기 위한 마실 거리의 역할만이 아니라 ‘커피를 마심’으로 깨어나는 영성은 상대방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문화의 공유’입니다.
차가 이미 교감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며 마시는 것이라면 커피는 낯선 타인과의 교감과 소통에 훌륭한 오브제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이제 ‘커피공화국’이라고 불려 질 정도로 수없이 많은 카페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커피의 1인당 소비량은 점점 증가하는 데 비해 카페들은 생겨났다가도 곧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대한 자본으로 찬란한 인테리어와 아늑한 자리를 제공합니다. 숙련된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카페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커피소비량은 증가하는데 카페업은 설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일까요?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카페를 열고자 하는 카페주인들의 마인드에 달려 있습니다. 멋진 인테리어와 아늑한 가구로 커피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앞으로의 우리나라의 카페업은 제자리 걸음이거나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입니다.
커피는 영성음료입니다. 커피가 열어주는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성을 채워줍니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적영성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카페는 발전이 없습니다.

지난 2013년, 우리나라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으로 커피를 전파시킨 터키의 커피문화전통도 유네스코 유산으로 당당히 등재되었지요. 비록 오스만 제국때보다 커피문화의 영향이 조금 시들어졌을지라도 터키는 커피의 나라, 커피문화의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터키인들은 커피를 사랑하고, 그 살아가는 삶이 커피를 통한 ‘소통’에 있기 때문입니다. 터키인들의 커피문화는 600년간 대를 이어가면서 커피의 영성과 함께 그 저력을 키워갔고, 어떤 의미에서는 커피와는 상반되는 차까지도 역시 그들만의 문화로 잘 탈바꿈하여 발달시켰습니다. 그런 터키인들을 보면서 조금은 부러움을 느낍니다. 차문화의 시배지이자 전통적 차문화의 고장인 이 하동에서 커피를 해 나가면서 차문화와 조화롭게 일구어나가고 싶은 것은 저만의 바램일까요?

다음은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시인 페테르 알텐베르크의 카페예찬입니다.
우리는 카페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걱정이 있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카페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애인이 약속을 어겼다면 카페로
신발이 닳고 닳은 자, 카페로

월급은 400크라운인데 지출이 500크라운이라면, 카페로
현실에선 보잘것없는 일개 노동자이지만 영예로운 장인을 꿈꾼다면, 카페로
맘 통하는 친구가 없다면, 카페로
자살 충동이 인다면, 카페로

사람들이 꼴보기 싫으면서도 또 그들 없이는 즐겁지 않다면, 카페로
친구 앞에서도 발표를 할 수 없는 형편없는 자작시가 있다면, 카페로

석탄도 떨어지고 가스도 떨어졌다면, 카페로
현관문이 잠겼는데 자물쇠 장수를 부를 돈이 없다면, 카페로

새로운 연인이 생겨 옛 애인을 약올리고 싶다면,
새 연인과 함께 옛 애인의 단골 카페로

어딘가로 잠적하고 싶은 자, 카페로
새로 산 옷을 자랑하고 싶은 자, 카페로
어디서도 외상이 통하지 않는다면, 카페로

페테르 알텐베르크 <카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