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못을 박는 연장으로 망치가 있다. 이 망치의 기능은 단 하나다. 그저 못만 박는 것이다. 망치 기능을 하는 또 다른 연장이 있다. 장도리다. 이 장도리는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한쪽 평평한 면으로는 못을 박고, 재봉틀 노루발처럼 생긴 반대쪽 부분으로는 박힌 못을 뽑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망치와 장도리의 서로 다른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못을 박기만 하는 망치와는 반대로 장도리는 잘못 박힌 못이나 필요 없는 못을 뽑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누군가의 가슴에 못을 박거나 박힌 못을 뽑아주는 일과 연관시켜볼 때, 장도리의 두 가지 기능은 참으로 인간적이며 감동적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받을 수도 있고 비평을 받을 수도 있다. 당연히 그런 지적이나 비평이 상식적인 기준에 따른 객관적 판단이라면 수긍도 하고 잘못에 대한 반성도 할 수가 있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용서를 빌 수도 있다. 그러나 온전히 ‘갑질’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태도로 무시를 당할 때는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집안에서 늘 아내에게 지청구만 듣는 어떤 남편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시키는 일이라면 언제나 열심히 했는데, 한 번이라도 인정은커녕 언제나 지청구를 받으면서 ‘꾸중’을 들었던 모양이다. 한다고 했는데 좀 매끄럽지 못하게 해 놓으면, “이런 것 하나도 못하냐?” 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아주 잘 해 놓으면, “이렇게 잘 하면서 왜 여태 안 했느냐” 하고, 시키진 않았지만 해야 할 일 같아서 알아서 해 놓으면, “왜 맘대로 하냐?” 하고, 그래서 시킬 때만 하면, “꼭 시켜야 하냐?” 하고….

이 이야기는 어쩌면 아내에게 쥐어 사는 ‘공처가’의 삶을 극단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라 생각된다. 시차(時差)가 있는 여러 상황을 하나로 묶어 이야기해 놓은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평소 우리는 주체가 누구든 자신도 모르게 이런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나를 한 번 돌아보게 해준다.

사람은 들숨과 날숨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나를 짓누르는 누군가의 ‘갑질’에 ‘헉, 헉’ 들숨만 쉬게 되면 그 누구도 살아 갈 수가 없다. 꼭 필요한 상황에서의 긍정적 ‘비평’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지만, 비평을 가장한 부정적 ‘비판’이 되면 참으로 곤란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장도리를 소환해 본다. 혹 욱하는 성질이나 좀 짧은 생각에 누군가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싶었을 땐 인생의 ‘장도리’가 되었으면 좋겠단 말이다. 가슴에 박힌 못을 뽑아 주는 장도리….

새해가 되었다. 해를 넘기고 보니 나이에 변화가 생겼다. 그런데 참 별일도 다 있다. 나이가 많아져야 하는데 올해는 나이가 적어진단다. 올해부턴 한국식 나이를 국제적 기준에 맞도록 법을 바꾸다 보니 나이가 적어지게 될 것이란다. 그래도 생물학적으로 한 해를 더 보탰으니 한 살이 더 많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김재진의 <나이>라는 시가 다시 떠오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용서할 일보다 / 용서받을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보다 /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 나이가 든다는 것은 / 기다리고 있던 슬픔을 순서대로 만나는 것이다. / 세월은 말을 타고 가고 /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침내 /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밀린 설거지를 하려고 수세미를 집어 드는데, 아내가 다가오면서 친정에 놀러온 큰딸에게 소리 지른다. “얘, 너네 아빠가 변했나봐!” 그동안 구박 받고 살아온 내 공처가의 삶이 눈덩이 녹아내리듯 위로받는 순간이다. 장도리 멘트치고는 2% 부족하다 싶지만, 그런대로 ‘해피 뉴이어’다. 우리 모두의 “해피 뉴이어!”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