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 미용실 단골이신가 봐요?” “아닙니다. 저는 진주에서 왔는데 오늘 처음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근데, 어찌 주인이 아닌 것처럼 말씀을 하시네요.” “예, 저는 일주일에 금요일 하루만 와서 알바를 하고, 평소에는 평생학습관에서 미용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아, 예, 어쩐지 머리를 자르는 손놀림이 예술이다 싶었어요.”

이 대화는 엊그제 외지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시간이 좀 남아, 어느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면서 미용사와 나눈 이야기의 일단이다. 머리를 다 자른 후 어떠냐기에 아주 만족스럽다고 대답했더니 그 분이 그랬다. “예, 두상이 참 잘 생겨서 예쁘게 잘 된 것 같네요.”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두상이 예쁘지 않다는 걸…. 누워 잠을 잘 때도 평형을 맞추기 힘든 두상이란 걸…. 그러나 미용사는 자신의 대단한 솜씨를 나의 두상 ‘덕’으로 돌리면서 ‘하얀’ 거짓말로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거짓말’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간혹이나마 두 시간을 달려가서 그곳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싶다는….

나는 언제나 이발소에서만 머리를 깎아온 사람이다. 목욕을 할 때 남자는 남탕, 여자는 여탕을 이용해야 하는 것처럼,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일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경우에 따라 미용실도 이용한다. 싫다는데도 아내가 막무가내로 미용실에서 깎아보라고 강권할 때나, 외지에 가서 이발소를 찾을 수가 없을 땐 미용실을 이용한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곳은 역시 이발소이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이발소는 직장 안에 있는 구내이발소다. 면도를 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저렴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흉금을 털어놓고 이발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상담도 해 준다. 철에 따라 이런저런 생활 정보도 알려주고, 간혹은 나의 삶과 생각에 대해 긍정적인 추임새도 넣어준다. 다른 자리에서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고 별로 말이 없는 내가, 이발소에만 가면 내가 먼저 주절주절 말을 꺼내기도 하고, 식구들 자랑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편한 곳이 나의 단골집 이발소이다.

이발소에 대한 포근한 인상은 어렸을 때부터 긍정적으로 형성된 것 같다. 명절이 다가올 때, 아버지를 따라 새벽 일찍 이발소에 가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온갖 음담패설로 유쾌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난로에서 달군 연탄집게 같은 고데기로 반듯하게 2:8 머리형을 잡아갈 때면 머리 타는 냄새가 이발소를 진동했고, 키가 작은 나는 의자 손잡이 위에 올려놓은 판자 위에서 머리를 깎아야 했다. 이발사 아저씨는 이런 저런 칭찬을 해 주었고 그 따뜻했던 이야기들은 아직까지도 귀에 선하다. 낡은 ‘바리깡’이 머리칼을 씹어 눈물이 찔끔거릴 때도, 그 칭찬에 항문만 옴질거렸을 뿐 아프단 말도 하지 못하곤 했다.

눈물을 흘리다가 잠깐잠깐 눈을 떠 보면 거울 위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 액자에는 기도하는 소녀 그림과, 그 옆에는 ‘삶’이란 제목 밑에 세필 붓으로 쓴 푸쉬킨의 시가 적혀 있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간이고, 그리고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지느니라.” 내가 지금 외우고 있는 내용에 다소 틀린 점이 있다면, 그때 그 액자 속 글에 문제가 있었다고 책임을 회피하고 싶다. 오늘 내가 시를 좋아하게 된 출발도 바로 이발소의 이 시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 미용실은 수없이 많은데 이발소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남자들, 특히 젊은이들이 대부분 미용실을 애용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나만이라도 이발소를 지켜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해 본다. 마징가가 지구를 지켜내려고 했듯이…. 그래야만 이발소에 대한 나의 추억이 하루라도 더 간직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