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중문과 교수)

운전을 하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슨 차가 저렇게도 많을까? 사람들은 무슨 일로 저렇게 바삐 달려가고 있을까? 다들 달려가는 목적지는 어디일까? 저 차 안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함께 탄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아무 쓸데도 없는 생각이지만 이런저런 궁금증이 생길 땐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궁금증의 대상이 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운전을 할 때는 신경이 참 많이 쓰인다. 그러나 고속도로나 차로가 둘 이상인 도로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적절하게 차선을 바꾸고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로가 편도 1차선인 경우다. 다양한 사정을 가진 차들이 내 뒤를 바짝 따라 올 땐 정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럴 땐 적당한 공간을 찾아 길을 비켜주곤 한다.

다른 차에게 양보를 해 주면 반응은 두 가지다. ‘얼른 그럴 일이지!’라고 말이나 하듯 쏜살같이 추월해 가는 차가 있고 간혹 비상깜박이를 깜박거려주고 지나가는 차가 있다. 후자는 양보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반응을 볼 때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다. 조그마한 선행에 큰 칭찬이라도 받은 듯이 기분이 좋고, 열 배 이상의 어떤 ‘보상’을 받은 듯한 느낌까지 든다. 이런 말을 하고 보니, 평소 나의 과도한 인정욕구와 모종의 보상심리를 토설해버린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분명 그렇다.

비상깜박이는 비상용이다. 따라서 비상이 아닐 때 비상의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자칫 오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보에 대한 감사 인사로 비상깜박이를 깜박여 주었을 때 그것을 ‘비상’의 의미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맥락’ 속에서 그것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맥락의 중요성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린 평소에 두 손가락으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하곤 한다. 살며시 웃으면서 날려주는 이 행동 하나는 상대를 행복하게 해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된다. 하지만 꼭 같은 하트모양과 웃음이라 할지라도 넘어져 울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했을 때는 치욕스런 조롱이 되고 만다. 손가락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살짝 밀면서 “어쩜 이렇게 예뻐”라고 할 때와, 똑 같은 행동으로 상대의 이마를 밀면서 “이 등신아”라고 했을 때의 메시지는 천양지차의 칭찬과 무시로 변하고 만다. 동일한 행동이 맥락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지는 결과들이다.

이처럼 맥락은 상식적인 원래의 가치나 기준을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사랑’을 전제로 하면 엉뚱한 해석이 야기되지는 않는다. 꼭 같은 말인데도 앞뒤의 맥락을 다 잘라버리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여 이를 공격용 무기로 활용하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악의적으로 맥락을 무시하면 이처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즉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만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현상이다.

한 때 코로나19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도 콘서트가 열린 적이 있다. ‘드라이브 인 콘서트’라는 색다른 공연이었다. 차에 앉아서 콘서트를 감상하는 방식으로, 대면이면서도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었던 지혜로운 콘서트였다. 이 때 관객들은 차 안에서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상향등을 켜고 경적을 울렸고 또 비상깜박이로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고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암울한 시기에 있었던 새로운 소식, ‘뉴스’였음에 틀림없다. 다 맥락이 아니면 이해될 수 없던 일들이다.

경적 한 번 짧게 울렸다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마당에, 대단히 길고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고서도 서로가 함께 즐거울 수 있었던 것 역시 맥락을 잘 접목한 결과다. 어떤 현상이든 사랑을 바탕으로 융통성 있게 활용할 줄도 알고 적절하게 해석할 줄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맥락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모두에게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