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경영하고 있는 식당에 캘리그라피 작품을 하나 만들어 걸어주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용서할 일보다 용서받을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아…. 이 글은 김재진의 시 ‘나이’란 작품의 시작 부분이다. 그런데 식당 ‘알바’ 대학생이 아들에게 묻더란다. 왜 나이가 들수록 용서받을 일이 많아지는 것이냐고?

질문은 내게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진짜 몰라서 그렇게 물었던 것인지 아니면 능청을 떠느라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이가 많아지면 배움도 깊어지고 경험도 많아져서, 실수나 잘못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게 사과할 일도 별로 없을 걸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는 게 하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풀며 살아온 세월보다 도움을 받고 은혜를 입어 살아온 세월이 더 많았더라는 사실이다. 살아갈수록 내가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아낼 일보다 내가 용서를 빌고 미안했노라고 고백할 일들이 자꾸 더 많아지더라는 사실이다.

물론 ‘용서받을 짓’을 일부러 저지르며 산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결론이 그렇게 귀결되면, 내가 나잇값도 못하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 반성이 될 때가 적지 않다는 나의 고백이다. 지금 소망 하나가 있다면, 설령 칭찬은 받지 못하고 살더라도 최소한의 구설수 없는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달리 말해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은 안 들었으면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인생 늘그막에 그런대로 나잇값이라도 하고 살려면 공자님이 끊고자 했던 네 가지 ‘사무(四毋)’에 유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첫째는 ‘무의(毋意)’이다. 무슨 일이든 너무 자의적으로 억측하거나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다고 해서 모든 생각이 옳고 판단이 옳은 건 아닐 수 있기에, 너무 자신의 뜻을 진리처럼 주장하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무필(毋必)’이다. 반드시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강요하지 말라는 말이다. 때와 장소, 입장과 처지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논리를 때로는 이해하고 받아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주관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내공이 충만한 인생 고수만이 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셋째는 ‘무고(毋固)’이다. 자신의 고집을 끝까지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옳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주장이 반드시 관철되면 좋겠지만, 살다보면 항상 자기 고집대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집대로 해서 성공을 했다 싶었는데, 시간이 흐른 후에 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간혹 후회되는 경우도 많기에 그렇다.

넷째는 ‘무아(毋我)’이다. 자신만이 옳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신세대들의 불만 중에 하나도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이에 관계없이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후회할 일은 적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공자님의 ‘자절사(子絶四)’ 충고는 넷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결국은 한 가지 의미로 집약된다. “제발 똥고집 부리지 말라”는…. 후회가 반복되는 건 이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알고 있는 걸 실천하지 못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공자님의 ‘사무(四毋)’ 내용 역시 그렇다. 대부분 다 아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하나, ‘실천’이다. ‘성인(聖人)’이란 의심할 바 없이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 ‘비범(非凡)’의 증거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