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하아무(경남소설가협회장)

겨울 땅거미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몰려든다. 돌돌 말린 나뭇잎이나 풀잎, 푸석한 먼지가 동행한다. 으레 그 시간이면 찾아왔지만 아무도 그것들을 반기지 않는다. 그것들의 동행이 시작될라 치면 사람들은 하나둘씩 그것들을 피해 집으로 향하거나 선술집 문을 열기도 한다.

사정은 동물의 왕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예 동면에 들어간 것들은 두고라도, 부족한 먹잇감을 찾아 하릴없이 산천을 헤매던 녀석들도 그 시각쯤이면 미련 없이 돌아서 제 보금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아침 일찍 도시를 나섰던 자동차들이 돌아온다. 도시는 자동차들의 집이다. 먹잇감을 찾아 근처 1시간 안팎 거리의 시․군이나 면 등지로 나갔던 이들이다. 사냥터는 멀어도 처자식들에게 먹잇감을 나눠주기 위해 그들은 꼬박꼬박 도시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바람도 지향 없이 아무 데로나 부는 것 같지 않았다. 아침이면 갓밝이의 냉기가 도시 밖으로 향하고, 해거름 바람은 다시 도시로 향하는 것이다.

자립도가 턱없이 낮은 군 지역에 둘러싸인 이 소도시에는 특히 그런 사람들이 많다. 오랫동안 생산보다는 소비만 해온 도시였고, 이제는 그런 것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도시는 불임이었고 자식은 밖에서 낳아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들도 자라면 모래알처럼 대도시로 흩어져갔다. 대다수의 소도시들이 그러했으나, 이 도시는 특별히 그런 특성을 대표하는 듯 보였다. 잘 살펴보면 삼십, 사십대는 드문데 비해 주변 지역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많고, 또 노인들도 많았다.

<성인용품>

가로 세로 일 미터 남짓의 펼침막을 매단 승합차가 도시의 국도변 초입에서 그들을 배웅하고 또 맞이했다. 마치 이 도시에서 가장 유의미한 일은 그것임을 강조하는 듯했다. 사실 그것은 소비가 미덕이 된 도시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차오르는 욕망을 소비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요, 역설적으로 그 도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산임을 은연중에 ‘오버랩’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펼침막은 승합차의 앞뒤와 왼쪽 면에 붙어 도시를 나가거나 들어오면서는 물론, 지나가면서도 볼 수 있었다. ‘성인용품’이란 글자가 펼침막의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 아래에 작게 두 줄로 ‘남여 성인용품, CD, 비디오, 콘돔, 란제리, 젤류 등 일절 완비’라고 써두었다.

유심히 봐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여서 제대로 본 사람도 드물었겠지만, 봤다고 해도 ‘남여’를 ‘남녀’로 고쳐 써야 한다거나 ‘일절’이 아니라 ‘일체’로 바꿔야 한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잘 살펴보면 ‘성인용품’이란 글자 위에 손글씨로 ‘성인 놀이터’란 굵은 글자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성매직으로 쓴 글자는 기름기가 날아 흐릿해진 터라,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글자라는 느낌보다는 얼룩처럼 보이기도 했다.

승합차는 하나의 큰 고치나 달팽이집처럼 보였다. 펼침막 때문이기도 했지만 운전석이 있는 앞자리 외에는 안이 전혀 보이지 않게 짙은 먹빛 비닐 코팅 빛가림이 붙여져 있었다. 빛가림이 아니더라도 안에는 각종 성인용품을 올려둔 진열대가 창을 가린 채 놓여 있어 어차피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차량 판매를 위해 운전석과 조수석을 뺀 나머지 의자를 모두 떼어냈다. 그리고 바닥에 장판을 깔아 손님이 걸터앉은 눈높이에서 응대할 수 있게 한 거였다.

그 안에 두찬은 으레 혼자 애벌레나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거 다 손님들을 위한 기다. 이런 데 오는 손님들은 전부 자기가 이런 데 있다는 걸 넘들헌테 안 들킬라고 하거든. 안이 다 보이믄 손님은 둘째 치고 개미새끼 한 마리도 안 올끼구만.”

두찬은 영우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근데 그러다 본께 나꺼지 바깥을 몬 보게 되는 기라. 오래 있다보믄 내가 이 안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빛가림의 단점을 이야기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음호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