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와서

넓은 집에

혼자 살아온 것도 칠팔 년

늘

참말 같지가 않았다

방문 열면 마루방

덧신 발에 걸면서 한숨 쉬고

댕그머니 매달린 전등불

믿기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정수리 자르며

지나가는 시간

저승길

헤매고 있는 거나 아닐까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

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

풀을 뽑고 씨앗 뿌랄 때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서쪽에서

빛살이 들어오는 주방

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

나는 내가

죽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박경리 시집 『자유』 -솔 -중에서

서울 정릉집을 정리하시고 원주로 이사를 하셨다. 그 집이 바로 원주시 단구동. 다시 말하자면 “옛날의 그 집”이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고 함께” 살던 그 집. 선생께서 원주로 거처를 옮기신 이유는 두 가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따님과 손자들이 원주로 이사를 하였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한반도의 중심이 된다는 원주原州에서 소설 『토지』를 끝맺음한다는 것에 대한 의욕 같은 것이었다고 회고하신 적이 있다. 피붙이 곁으로 가시기 위해 나선 원주행. 그리 홀로 사신다는 것에 대한 여러 감정들이 위의 시에서 묻어나 착잡할 뿐이다. - 최영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