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분이 컴퓨터의 글자들을 하나하나 읽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때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순덕은 구성지게 목청을 높였다. 큰언니가 가르쳐 준 노래라고 했다. 친구들은 어깨쯤에서 머리카락을 잘라 핀으로 앞머리를 고정시킨 그녀를 쳐다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 처~녀. 종달~새가 울어~ 울어~ 이팔청춘 봄이 가네~”

순덕의 가냘픈 목소리에 모두들 매료됐다. 말분은 순덕을 쳐다보며 노래를 불렀다. 목울대가 떨며 소리가 빠져나갈 때 가슴이 뻐근했다. 신흥 아래 합수 장터에서 칠불사 쪽으로 삼백 보쯤 올라가면 순덕의 집이었다. 집 앞에서 순덕은 다시 한번 구성지게 노래를 불러 마지막을 장식했다.

“어허야~ 얼씨구 타는 가슴~ 요놈의 봄바람아~”

말분도 순덕이처럼 신나게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다. 말분은 결코 순덕이한테 지고 싶지 않았다. 글공부로 따지면 너보다 내가 훨씬 낫지. 말분은 순덕의 집 앞에 다다르면 담에 또 봐, 한마디 하고는 쌩하니 가버렸다.

한글을 배운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진우 오빠가 군대에 가버린 것이다. 열두어 명의 처녀들이 모두 편지를 적고 싶어 했다. 순덕이 말분을 찾아왔다.

“야, 너의 집 아래, 벚나무 아래 평상에 놀러 가지 않을래?”

• 벚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쉬자고 했다. 벚나무는 짙푸른 가지와 잎을 싱싱하게 뻗어 올리고 있었다. 벚나무 아래로 쌍계사 어귀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콸콸콸 흘렀다. 계곡을 일별하던 그녀가 종이와 연필을 보자기에서 꺼냈다. 편지를 적을 때 뒤통수가 튀어나온 순덕이 큰 소리로 말하면 말분이 받아 적었다.

글 모르는 봉사

눈 뜨게 해져서 너무 감사함니다.

팔자가 바뀌어습니다.

말분은 그런 표현을 쓸 줄 몰랐지만 순덕은 머리 뒤 꼭지에 숨어 있던 좋은 말들을 하나둘 끄집어냈다. 순덕이 다음은 뭐 쓸까, 라고 했다. 그녀도 순덕이한테 지고 싶지 않아 손목을 턱에 괴고 생각에 잠겼다.

정혜는 엄마가 중얼거리는 것을 보며 일어선다.

“순덕의 부탁이었지만 내가 오빠에게 연애편지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오빠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곳에 모인 동네 처녀 중 젤 먼저 글을 깨쳤으니까. 오빠가 나를 최고로 인정해줄 것을 의심치 않았어. 순덕이가 돈 십 원을 내 손에 쥐여 주며 처음 편지를 부탁할 때 거절했어야 했어. 순덕이가 부르는 대로 나는 편지 내용을 받아 적었어.”

말분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중얼거린다.

“그때…….”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말분’이라고 이름을 적으려는 찰나였다. 기어코 쓰던 편지를 뺏어 든 순덕은 연필에 침을 발라 삐뚜름하게 자기 이름을 썼다.

‣ 소설가 홍혜문(본명 홍춘숙) 경남소설가 협회장, 경남 예술진흥원의 신중년 사회공헌사업 일환으로 박경리문학관에서 하동10경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