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언젠가 이런 유머를 접한 적이 있다. 어느 집에 화재가 났는데, 놀란 가족들이 울부짖으며 불을 끄고 있을 때, 그 옆을 지나가던 거지 아버지가 아주 호기롭게 자기 아들한테 이렇게 말하더란다.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해라. 넌 아버지 덕분에 화재가 날 집도 없고, 불 끌 걱정도 없잖아?” 요즘 세평(世評)에 따라 해석을 하자면 이 우스갯소리에는 뭔가 아픈 곳을 찌르는 현실에 대한 풍자가 들어있다. 부모 능력에 따라 운명이 정해지는 오늘 자식들의 현주소….

우리에게 이루고 싶은 소망 하나가 있다면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있고말고!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재벌 2세로 태어나는 것. 둘째, 권세 있는 집안 자녀와 결혼하는 것. 셋째, 항문이 빠지도록 피땀 흘려 노력하는 것.

이 중에서 보통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방법은 어느 것일까? 당연히 세 번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다. 일하고 싶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청춘들이 죽어라 ‘스펙’만 쌓아가며 답답한 심정으로 무정한 세월만 보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사는 자식들이 부모 찬스와 특혜를 받아 무한 질주를 하고 있다는 ‘검은’ 뉴스들이 천지를 진동한다. 참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오늘, 범부(凡夫)의 부모를 둔 ‘평범한’ 청년들은 애먼 부모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신세가 한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따지고 보면, 그게 아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부모 찬스로 입신(立身)한 자식들의 행복이 그리 부러워할 게 못 됨을 확인하게 된다. 그들의 행복이 참으로 근시안적 행복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능하지 못한’ 부모님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고, 가난한 거지 아버지가 오히려 훌륭한 부모로 해석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고,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아닐 수 없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란 무슨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인지상정이다. 그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그저 방법의 차이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러나 부모 된 사람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부정한 방법으로 자식의 ‘행복’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상식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자식에게 만들어주는 그 ‘디딤돌’은 결국 자식의 인생과 행복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자식의 ‘청출어람’을 소원한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가장 속상해 하는 일이 이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라도 도와주고 싶고 지원을 해 주고 싶다. 그러나 이런 애틋한 마음으로 부모가 최선을 다한다 해도, 살다보면 부모 바람대로 살아주지 못하는 자식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부모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옳은가?

죄를 지은 자식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자식이 교도소에 들어가기 직전에 수갑을 차고 탈주를 해서 부모를 찾아갔더란다. 부모는 어떻게 해야 옳을까? 취할 길은 셋이다. ‘빽’을 써서 없던 일로 만들어 준다. 빼돌려 숨겨준다. 자수를 시킨다. 엊그제 뉴스에서 본 그 ‘아버지’는 자식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 먹인 후에 직접 경찰서로 데려가서 자수를 시켰다고 한다. 참 못난 ‘아버지’다. 자식을 자기 손으로 감옥에 집어넣은 못난 아버지…. 그러나 눈물이 찡할 정도로 감동이 밀려온다. 이 세상 최고의 아버지요, 최고의 어른이요, 최고의 스승이라는….

심호택 시인은 <똥지게>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 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시는 오늘 내게 ‘명령’한다. 시에서 말하는 이런 ‘어머니’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라는….